KBS, '일본해' 표기 지도 방송으로 물의

중앙일보

입력

KBS 1TV가 지난 1일 신년특집으로 '코리아 네트워크를 구축하라'(연출 김성기) 를 방송하면서 스튜디오의 배경 그림에 `동해(East Sea) '를 '일본해(Sea of Japan) '로 표기한 영문지도를 사용해 물의를 빚고 있다.

KBS는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560만명의 동포를 민족의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을 방송하면서 진행자 뒤에 아시아 지역의 지도를 그려놓았는데 이 그림의 원판이 'Sea of Japan'으로 표기된 지도였던 것.

KBS는 흰색으로 쓰인 'Sea of Japan'의 'Sea of'는 그대로 놓아둔 채 아랫줄의 'Japan' 부분을 굵은 노란색 날줄(위도) 로 가린 채 방송했다.

이를 본 일부 시청자들은 'Sea of'가 오른쪽에 검은색으로 쓰인 일본의 영문국명 'JAPAN'과 이어진 것으로 착각해 'Sea of Japan'으로 표기된 지도를 사용했다며 항의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방송계 일각에서는 "비록 KBS가 'Sea of Japan'이라는 표기를 그대로 방송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동해(East Sea) '로 쓰인 지도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일본해(Sea of Japan) ' 표기 지도를 수정해 사용한 것은 방송 종사자들의 무신경과 무의식을 드러낸 것"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더욱이 KBS 관계자는 "대한항공에서 지도를 빌려와 사용했는데 일본해(Sea of Japan) '로 표기된 지도일 리가 있겠느냐"고 했다가 "국내에서 제작된 영문지도가 괜찮은 것이 없어 해외에서 제작된 영문 지도를 골라 사용했다"고 뒤늦게 실토했다.

이에 대해 책임연출을 맡은 이성원 부장은 "배경으로 사용한 지도는 단순히 프로그램에 글로벌한 이미지를 덧칠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꼼꼼하게 챙기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Sea of' 글씨가 흐릿하게 나타나 시청자들이 식별하기 어려울 뿐더러 'Japan' 부분을 가렸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동해의 국제적 표기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이 힘겨루기를 넘어 감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영방송사들이 일본해 표기 지도를 배경화면이나 소품으로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방송심의규정도 제13조에서 `방송은 민족의 존엄성과 긍지를 손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동해'의 표기와 관련한 제재사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지난 95년 KBS 2TV는 일일연속극 '며느리 삼국지'의 예고방송을 내보내면서 'Sea of Japan' 중 'Japan' 부분만 수정액으로 지워 방송했다가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고 본방송 타이틀 장면에는 모든 글씨가 보이지 않게 어두운 화면으로 처리했다.

지난해 2월에도 MBC TV가 '21세기 음식대전(飮食大戰)'이란 설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면서 '일본해(Sea of Japan) '로 표기된 지구본을 화면에 등장시켜 말썽을 빚기도 했다.

한편 95년에는 케이블TV 현대방송(HBS) 이 영화 '죽음의 유령선'을 방송하며 '일본해'란 자막을 여러 차례 내보내 시청자들의 비난을 사는가 하면 98년에도 주한미군방송 AFKN이 'X파일'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Sea of Japan' 표기의 지도를 방송해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동해연구회 부회장인 이기석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방송 당일 '코리아 네트워크를 구축하라'를 시청하면서 KBS에 전화를 했으나 '녹화방송이어서 고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면서 "동해의 국제적 명칭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와 관련학자들이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기간방송이 신년 벽두에 국가적으로 불이익을 초래할지도 모를 장면을 내보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그는 "방송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고용돼 있지만 지도 전문가는 한 사람도 없다"고 지적하며 "지도 전문가가 비단 동해의 명칭뿐 아니라 뉴스를 비롯한 모든 프로그램의 지도 관련 화면을 사전에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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