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학생 함께 스터디그룹 … SKY 진학 3년 새 4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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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09년 2월 개학을 코앞에 둔 서울 강서구의 영일고엔 비상이 걸렸다. 새로 배정된 신입생 500명 중 30명이 등록을 포기하고 전학을 간 때문이다.

 “학교가 이 지경이 되면 우리 아이는 어떻게 하느냐며 우는 학부모까지 있었죠.”(박상호 진학부장교사)

 원인은 저조한 대입성적이었다. 2009학년도 입시에서 SKY 합격자가 13명에 불과해 1975년 개교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영일고는 80년대에는 100명 이상, 2000년 이후에도 30명 이상은 꾸준히 SKY에 보냈던 명문고였다. 하지만 수시 모집 확대 등 입시 환경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당시 학부모들은 “학교를 어떻게 믿고 아이를 맡기느냐” “교사들은 그동안 뭘 한 거냐”며 항의했다.

 ‘미운 오리’로 전락했던 영일고가 이번 입시에선 화려한 ‘백조’로 거듭났다. SKY에 50명을 합격시킨 것이다. 3년 사이 합격자수가 4배 가까이 늘었다. 심건섭(57) 교장은 “학교가 학생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는 교사들의 책임감이 비결”이라고 했다.

 학교는 땅에 떨어진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는 일부터 시작했다. 매년 20번이 넘는 간담회를 열어 학부모들의 불만과 의견을 들었다. 간담회에서 교사들은 입시학원을 더 선호하는 학부모들에게 “학교에서 책임질 테니 믿고 맡겨 달라”고 호소했다.

 교사들은 또 격주로 진로지도 세미나를 열어 입시전략을 짰다. 입학사정관제와 수시 대비를 위해 교사들이 나서서 물리·경제 등 소규모 스터디그룹도 만들었다. 매주 학생들과 책이나 문제집을 놓고 토론하며 면접과 논술을 준비했다. 수업 시간에도 단순 문제풀이보다는 주제를 던져주고 학생들 간의 토론을 유도했다. 올해 연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최종찬(19)씨는 “3학년 내내 했던 토론스터디가 수시 논술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덕분에 올해 SKY 합격자의 절반 이상은 수시에서 나왔다.

 자율학습도 강화했다. 자습실을 365일 개방하고 12개 자습실마다 감독교사를 뒀다. 엄격한 분위기 덕에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퍼졌다. 3학년 고지훈군은 “학교에서 공부하면 친구들끼리 응원도 해주고 경쟁심에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취재팀=성시윤(팀장)·천인성·윤석만·이한길·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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