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중 FTA 협상 개시 … 대내협상 신경 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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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과 천더밍(陳德銘) 중국 상부부장이 어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했다. 한·중 FTA는 우리의 최대 교역국과 맺는 단순한 경제협정 차원을 뛰어넘는 사안이다. 한·미 동맹과 북·중 동맹, 미·중 패권경쟁이 교차하는 동아시아에서 한·중 FTA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기여할 지렛대라는 중대한 의미도 띠고 있다. 또 중국이 주변국들과 FTA를 서두르는 마당에 우리도 경쟁력 유지를 위해 더 이상 미뤄두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한·중 FTA는 국내 파급효과가 다른 FTA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하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일단 양국이 2단계로 나눠 협상을 벌이기로 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이 농수산 분야를, 중국이 자동차·기계·석유화학 등을 민감 분야로 분류하는 것도 현명한 판단으로 보인다. 민감 품목들은 양허관세에서 제외하거나 개방을 유예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협상 과정이 보다 원만하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낮은 수준의 개방에만 머물다 보면 한·중 FTA의 의미 자체가 퇴색돼 버릴 수 있다. 따라서 일반 품목과 서비스·투자 분야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보다 자유화 수준을 훨씬 높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FTA 체결에 따른 상호이익 극대화를 기대할 수 있다.

 FTA 협상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분야는 대내협상(對內協商)이다. 피해 업종에 대한 보완대책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후유증을 피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번 협상이 진통을 거듭한 한·미 FTA보다 원만하게 진행된 한·EU FTA의 경로를 따라가길 바란다. 돌아보면 한·중이 7년 전부터 FTA 연구팀을 가동시켜 왔지만 전문가 차원의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며, 대내협상을 위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현 정부가 임기 내에 협상을 끝내겠다고 덤빈다면 섣부른 욕심이다. 우선 1단계 협상을 치밀하게 진행하면서 최종 협상은 차기 정부로 넘길 수 있다는 각오로 차분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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