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속 빈 강정’ 휴대전화 자급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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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휴대전화기를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살 수 있는 ‘휴대전화 자급제’가 1일 시행됐다. 그러나 이동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의 비협조적 태도로 유명무실의 위기에 처했다. 판매처 다변화로 이통사의 시장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소비자 부담을 줄이려던 방송통신위원회의 계획도 난관에 부딪혔다.

 휴대전화 자급제는 일명 ‘블랙리스트 제도’로 불린다. 분실이나 도난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단말기가 아니면 무엇이든 기존에 사용하던 유심 칩을 꽂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이전에는 특정 이통사 대리점에서 그 회사에 등록된 휴대전화만 구입·개통할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소비자는 자기 필요보다 이통사 마케팅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았다. 최고 사양 스마트폰인 LTE폰 열풍이 한 예다. LTE는 아직 전국망이 완료되지 않은 데다 단말기와 요금제 모두 비싸다. 그럼에도 이통사들이 이를 집중 취급하면서 어느새 대세가 됐다. 현재 이통사 대리점에서 살 수 있는 일반폰은 손꼽을 정도다. 이통사와 제조사가 수익 극대화를 위해 강력한 유통 카르텔로 소비자 선택권을 사실상 제한한 경우다.

 상황이 이런 만큼 휴대전화 자급제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자못 컸다. 그러나 새 제도의 뚜껑이 열린 지금, 반응은 썰렁하다. 일단 주요 대형마트와 편의점 중 어디도 단말기 판매를 시작하지 않았다. 이통사·제조사 간 카르텔이 여전히 공고해 가격 경쟁력이 없다고 본 때문이다. 제조사들은 제품 출고가를 부풀려 이통사에 납품하는 대신 판촉비 일부를 지원한다. 대형마트도 같은 조건을 적용받을 수 있어야 하나 현재로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또 하나, 이통사들은 ‘자급폰’ 사용자에 대해선 기존 수준의 요금 할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통사 차원의 애프터서비스도 제공하지 않겠단다. 이래서야 소비자들이 자급폰을 택할 이유가 없다. 방통위는 소비자 편익은 물론 정부의 정책 목표에 반하는 이통사들의 ‘배짱 장사’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자급폰 사용자를 위한 할인 요금제 출시부터 독려해야 한다. 통신 요금과 관련한 용두사미식 정책을 그간 우리 국민은 너무 많이 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