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충무공 해전 전적은 ‘23전 23승’ 아닌 ‘62전 62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9면

이순신연구소는 24일 이순신 정론이라는 주제의 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 순천향대]

역사적 인물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대한 각종 이설(異說)을 정론(正論)으로 바로잡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학계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특히 해전횟수부터 출신 배경까지 그동안 역사적 사실로 알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불편한 진실(?)이 제기되면서 ‘영웅 이순신’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순천향대학교(총장 손풍삼) 이순신연구소(소장 임원빈)는 24일 충무교육원 강당에서 임진왜란 발발 7주갑을 맞아 ‘이순신 정론’이라는 주제로 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 세미나는 충남 아산시의 최고 축제인 ‘성웅 이순신 축제’에 앞서 진행돼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날 학술세미나에는 해군리더십센터 제장명 교수와 해군사관학교 이민웅 교수, 이순신연구소 임원빈 소장, 정진술 문화재 전문위원, 연기교육청 홍순승 장학관 등이 발제자로 나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먼저 ‘해전횟수·면사첩·백의종군’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제장명 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23전 23승을 거뒀다는 주장은 실체가 없이 대략적인 셈으로 표현한 횟수라고 지적했다.

 제 교수는 “지난 2004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방영을 전후해 ‘23전 23승’이라는 문구가 각종 매체에 이순신의 전적으로 사용됐지만 이러한 주장은 구체적인 해전명칭을 제시하지 않고 대략적인 횟수만 카운트했기 때문에 어떤 해전들로 구성돼 있는지 알 수 없다”며 “임진왜란의 대표해전은 총 21회로 이중 이순신은 총 17회 대표해전에 참가해 전승했고 세부해전 49회 중 이순신은 45회 참가해 전승(총 62전승)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이순신 장군의 출신 배경을 들고 나온 이민웅 교수는 지금까지 알려진 이순신 가계가 조부 때부터 몰락해서 매우 빈한(貧寒)했다는 설은 역사적 사실과 분명히 다르다고 밝혔다. 이는 역사적으로 ‘영웅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어린 시절 어렵고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국가를 구한 위대한 인물이 됐다는 과장된 스토리텔링이 그대로 인식돼 굳어진 탓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역사적 해석의 문제점으로 충무공 이순신은 우리나라 국민이 존경하는 위인을 꼽을 때 항상 1, 2위를 다투는 대표적인 인물로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후 현재까지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한 번도 비판적인 경우가 없었다”며 “그러나 지나친 성웅화·영웅화로 인해 이순신과 당시 역사상에 대한 충분한 연구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고 미화와 포장에만 급급한 나머지 여러 가지 한계점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진란 최고의 해전으로 평가 받는 명량해전에 대해서는 임원빈 소장이 발표자로 나섰다. 임 소장은 13척으로 200여 척과 맞서 승리한 명량해전은 불가사의한 해전이라고 전제한 뒤 첨단 무기체계로 무장한 판옥선과 이순신의 전략전술·리더십이 결합돼 시너지화된 막강한 전투력이 승리요인이고 강조했다. 그러나 철쇄설치설과 관련된 사료 분석을 통해 철쇄설치설은 구전돼 온 설화성 이야기이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번 학술 세미나에서는 거북선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정진술 위원은 “임란기 거북선에 대해서는 이순신의 장계(狀啓·지방에 파견된 관원이 글을 써서 아뢰는 문서)와 그의 조카 이분(李芬)이 저술한 이순신 행록(行錄)에 나타나는 몇줄의 기록이 전부였다”며 “이후 1930년대에 언더우드가 처음으로 거북선의 구조에 대해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이래 오늘날까지 많은 학자들이 다방면에서 적지 않은 연구 성과를 이룩했다”고 말했다.

 이순신 장군의 전사설·자살설·은둔설도 주목 받는 주제였다. 홍순승 교육장은 이순신의 죽음에 관한 각종 설이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정설은 이순신이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사망했다는 전사설이라고 주장했다.

 홍 교육장은 “노량해전은 이순신뿐만 아니라 다수의 조선군 지휘관, 명(明) 장수, 일본군 사무라이가 전사한 대규모의 해전이었다”며 “이순신이라고 해서 죽음에서 제외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자살설·은둔설을 부인했다.

 홍 교육장은 이어 “자살설과 은둔설은 둘 다 이순신의 죽음이 비정상적이었다는 의혹을 가지고 고난과 죽음의 위기를 겪어야 했던 민족적 영웅의 비극적인 일생을 주관적인 정서를 개입시켜 묘사했다. 이는 무능한 조정에 대한 비판과 당쟁의 부조리를 부각시켜 ‘이순신은 당쟁의 희생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충분한 설득력을 얻기에는 이론적인 근거 제시나 실증적인 자료의 뒷받침이 미흡했다”며 “이순신이 죽은 지 4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민족사의 유일무이한 성웅의 죽음을 가지고 확실한 증거도 없이 비약적인 상상이나 구구한 억측으로 자살이니 은둔이니 하는 것은 아무런 소득이 없고 그의 값진 죽음에 모독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순신연구소는 이번 학술 세미나와 함께 27일 열린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 기간에 맞춰 ‘소년 이순신, 무장을 꿈꾸다’라는 주제로 역사교육 연극을 마련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최진섭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