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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 민주화 압력 中 체제 유지 비용 커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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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하려 하겠지만 그 유지 노력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중국 역사학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조너선 D 스펜스(76?사진) 예일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욕구가 날로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대 과학문화연구센터가 주최한 제1회 템플턴 ‘동아시아 과학과 종교’ 강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스펜스 교수를 26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만났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는 중앙SUNDAY가 처음이다.

-당신은 인물 중심의 독특한 역사 서술로 유명하다.
“한 인물의 삶을 통해 그가 살던 시기의 사회적 맥락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인물이 가장 중요하다. 여러 인물, 특히 동서양의 여러 인물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더 많은 걸 알 수 있다. 성(性)의 문제와 아동, 경제, 지성사 등 모든 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얼마 전 실각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 사건을 어떻게 보는가.
“3대에 걸친 가족 이야기라 말할 수 있다. 혁명가였던 할아버지 보이보(薄一波)부터 300만 달러가 넘는 람보르기니를 탔던 흥청망청의 손자 보과과(薄瓜瓜)에 이르기까지 보(薄)씨 가문이 극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 중국 정치의 구조적 문제가 한 가족을 통해 드러났다. 중국 역사에서도 이런 선례들이 있다. 힘 있는 정치인이 몰락하면 가족도 함께 쇠락하고 마는 것이다. 어떤 정치적 투쟁이나 스캔들이 대중에게 알려진다는 건 리더십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 정치학자 수전 셔크(Susan Shirk)는 ‘중국에서 출세하지 않으려면 어려운 질문을 많이 던지면 된다’고 말했다. 보시라이 사건은 1971년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던 린뱌오(林彪) 사건 이래 가장 흥미로운 사건이다.”

-중국 경제는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왔다. 중국의 경제발전이 지향하는 종착점은 어딘가.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은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을 사회에 어떻게 배분할지를 실험하고 있다. 공공, 군사, 교육 분야 등에 각각 어떤 비율로 돈을 투입할지 고민하고 있다. 보시라이 사건 역시 부(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분에 넘치는 부를 나누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자본주의가 통제되지 않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중국은 경제적으론 강하지만 다른 분야는 아직 취약하다. 중국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중국은 민주사회로 갈 것인가, 아니면 공산당 일당체제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당분간 일당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 유지 노력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중산층이 성장하고 민주주의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중국에서는 현재 70만 개에 이르는 작은 마을에서 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선출된 인사들의 경우 외부 세력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또 노조에 의한 혁명도 일어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고령인구 부양 등에 정부 지출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런 모든 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각종 난제가 쌓여가며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운동, 학생시위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중국에는 우한(武漢), 광저우(廣州), 상하이(上海) 등 혁명의 전통을 가진 도시가 많다.”

-중국 지도부는 ‘15세기 이래 9개 강대국의 흥망성쇠에 관한 고찰’을 공부했다고 한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열 번째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 보는가.
“강대국의 흥망은 역사적 파노라마다.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에서도 쓴 것처럼. 하지만 이는 유럽 중심적 시각이다. 한 시대에 제국은 하나만 존재한다는 논리와 제국은 순차적으로 존재한다는 이론 등 두 가지가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하나의 제국이 또 다른 제국과 공존한 시기가 많았다. 여러 제국이 공존하게 되면 제국 간에 긴장이 고조된다. 하나의 제국은 200년 정도 지나면 피로 현상이 생긴다. 국민이 지친다. 제국의 돈도 고갈되고, 리더십 스킬도 사라진다. 군사력도 사라진다. 하나의 제국을 200년 이상 경영하기 어려운 것이다. 청(淸) 제국도 1620년부터 1780년까지가 전성기였다. 160년을 넘기지 못했다.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1900년대 초반 영국과 독일의 경쟁 구도가 있었다. 영·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쟁이 발발했다. 많은 사람이 1900년대 영·독 간의 라이벌 관계를 중국과 미국 사이의 라이벌 관계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은 스스로 해결해야 할 국가 내부의 문제가 너무 많다. 중국 또한 국내 문제에 더 신경을 쓸 것이다.”

-중국이 부상한 뒤 한국에 어떤 이웃 나라가 될지 궁금하다. 한국인 입장에서 걱정스러운 건 중국에서 혹시 편협한 민족주의가 득세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중국이 아시아에서 ‘존경받는 대국’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민족주의는 단순한 정서에서부터 살인을 부를 정도의 극단주의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1820년대부터 1915년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하면서 그 정체성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중국의 민족주의는 역사적 현상이며 반(反)제국주의적 현상이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베이징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베이징에서 보자면 남북한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어 일본, 필리핀, 미얀마 등으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중국 정부가 쉽게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음을 항상 상기해야 한다. 중국의 지도를 볼 때 1910년이나 2010년이나 비슷하다. 중국이 이제 영토를 확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국은 팽창을 연구하기보다 13억 인구에게 어떤 혜택을 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게 맞을 것이다.”

만난 사람=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scyou@joongang.co.kr
정리=신경진 기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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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스펜스 중국식 이름은 스징첸(史景遷)이다.
은사였던 청(淸)나라 인물사의 대가 팡자오잉(房兆楹·1909~1985)이 지어줬다. 그는 사마천 스타일의 글쓰기로 유명하다. 역사를 마치 문학작품처럼 생동감 넘치게 써 내려가는 문사일체(文史一體)의 서술방식이 사마천과 서로 닮았다.
그는 1993년 예일대에서 가장 뛰어난 학술 권위자에게만 부여하는 ‘스털링 교수(Sterling professorship)’에 선정됐다. 스펜스 교수의 중국사 강의는 예일대 최고의 인기 과목이다. 한 학기 수강생이 700여 명에 이른다. 스펜스의 저서 중 세 권을 번역한 이준갑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는 “스펜스는 역사 속 인물의 개성을 찾아내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세계 최고의 학자”라고 평가했다. 저서로는 ?중국인 후의 기이한 유럽 편력? ?반역의 책? ?강희제? ?현대 중국을 찾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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