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경감 어려운 농민에 제대로 지원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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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농촌과 농민을 돕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농촌에 지원한 세금이 모텔을 짓고 다방을 차리는 데 들어가고, 그러다 얼마 뒤엔 농가 빚부담을 덜어준다고 다시 세금을 털어넣는 방식은 절대 안됩니다." 서울에 사는 주부 朴모(33)씨의 말이다.

그동안 농촌구조개선사업에 투입된 42조원의 투융자사업, 현재 진행 중인 2단계 45조원 투융자사업, 그리고 연례행사 같은 수조원대의 농가부채 경감 대책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다.

지원도 좋지만 세금으로 조성한 막대한 농어촌 지원 자금이 과연 투명하고 효율성 있게 투입되고 있느냐는 의문 때문이다.

실제로 1998년 대검찰청이 농어촌구조개선자금 집행 비리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한 결과 영농사업자.농어민.공무원 등 2백98명이 모두 3백38억원을 가로챈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문제는 아직도 이런 허술한 관리 시스템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남도청의 경우 올해 초 정책자금인 '농업인 자녀 학자금' 가운데 1억7천4백만원을 잘못 지원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서울에 고급 아파트가 있고, 광주시 요지에 땅을 가지고 있는 농가에도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민 자녀의 학자금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자금이 조성됐지만 '경작지가 1㏊ 미만인 농가' 를 대상으로 설정한 지원 규정을 그대로 적용, 농토의 크기만 작으면 부농이든 빈농이든 획일적으로 지원한 것이다.

강원도 내 14개 시.군에서는 도시의 회사원으로 취직해 꼬박꼬박 봉급을 받고 있는 87명을 농업인 후계자로 지정, 5천5백만원을 무상 지원하고 16억4천만원의 정책자금을 저리로 빌려준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경남 S농협 전무는 "정책자금도 가만히 보면 이른바 '다방 농민' 으로 불리는 힘있고 목소리 큰 사람들이 타간다.

다른 농민은 자금이 나왔는지도 모르는데 어느새 군청에서 지원 대상으로 뽑혀 돈을 타러온다" 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김규영 조직교육부장은 "일부 부도덕한 농민이나 공무원 때문에 전체 4백50만명의 농민이 매도돼서는 안된다" 며 "정부 당국이 정책자금 관리를 주먹구구식으로 하고 농정을 잘못 펴 농민들이 빚더미에 올라앉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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