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의 쉬운 풍경 7] 봄은 왜 멀리서 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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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1995. ⓒ강운구

꽃이 봄보다 먼저 온다. 그것은 자연과는 거리가 먼 도시에서 먼저 피었다가 서둘러 떠난다. 이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되다가 당연하다로 바뀐다. 봄은 제 스스로가 설정한 기준에 맞을 때만 올 터이다. 그렇지만 나쁜 공기가 만드는 복사열에 꽃이 속는다. 도시의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는 인공인지 자연인지 헛갈린다. 그것에 사람도 속아 봄이 왔구나 하고 먼 자연으로 나가보면 아직 산과 들에는 소식이 감감한 수가 많다. 그러므로 봄을 길게 누리려면 일찌거니 남녘으로 마중 갔다가 느지막이 북쪽의 높은 산으로 등산 가서 배웅까지 하는 것이다.

 암벽등반에서는 장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인공등반과 자유등반으로 구별한다. 이를테면 암벽에 쇠줄사다리를 걸고 그것을 밟고 올라가는 것은 인공등반이다. 그리고 오로지 몸의 힘과 기술로만 오르는 것은 자유등반이다. 걸어서 오르기만 하는 등산에서는 그런 구별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따지자면 우리나라의 이름난 산에서 걷는 자유등반은 불가능하다. 길 없던 가파른 곳에 길을 내거나, 안전하게 하거나, 자연을 보호한다거나… 하는 여러 이유로 설치한 나무나 철 계단과 다리를 밟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이름난 산은 이젠 없다. 그러므로 산에 인공은 있고 ‘자유’는 없다. 그렇거나 말거나 고맙게도 그런 산에 계절이 오고 간다.

 봄이 저 가파르고 높은 오대산 비탈을 기어올라간다. 풀빛이 이루는 경계의 질서가 분명하다. 봄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얕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눈앞의 그런 상태는 참 놀랍다. 첨병 풀빛은 아늑하고 깊숙한 골을 따라 먼저 올라가고 나머지는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골짜기와 능선, 이윽고 봉우리까지 감싸면 그 산의 봄이 완성된다. 위도와 고도의 차이에 따라 벌어지는 이런 풍경은 흑백 사진으로는 어렵다. 한때는 정확하게 색깔을 재현한다는 컬러필름을 애써 찾아 썼다. 그러다 여러 한계 안에서 정확한 색의 재현은 아무래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표현방법상 약간은 과장되게 색을 나오게 하는 필름을 용서하게 되었다. 그에 견주자면 디지털 사진술에서는 빛깔을 조절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성능이 많으므로, 용서하거나 말거나 할 것이 없다. 때로는 아주 조금 과장된 빛깔 표현이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끌 수도 있다. 노인봉께에서 바라본 오월 초순의 봄 빛깔은 그렇다. 이 세상에는 멀리서 봐야만 보이는 것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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