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체육 살리자] 4. 미국의 학생 선수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현역 시절 이름처럼 아름다운 슬라이더를 던졌던 론 달링(40.은퇴).

그는 내년 1월 16일 최종 발표될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후보 가운데 한명이다. 13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며 1986년 뉴욕 메츠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89년에는 내셔널리그 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그의 경력이 더욱 빛나는 것은 그가 예일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최상위권 대학 출신 프로야구선수인 셈이다.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달링이 메이저리거로 성공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철저히 체계화한 미국의 학교체육이 자리잡고 있다.

프로스포츠의 천국 미국을 지탱하는 힘은 넓은 대륙을 기반으로 한 거대한 인프라와 다양한 생활체육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학교체육에서 출발한다.

◇ 몸을 알고, 몸을 다스리는 초등학교 체육

코네티컷주 웨스트하트퍼드 브레이번 초등학교의 5학년 체육시간. 수업 시작과 함께 체육관에 들어선 20명의 학생들은 가장 먼저 양말을 벗고 다섯명씩 4개 조로 나눠 이리저리 뛰기 시작한다. 몸을 푸는 시간이다.

10분 정도 뛰고난 학생들은 교사의 지도로 뉴잉글랜드 지방의 전통춤을 배운다. 춤을 통해 몸의 균형과 협동심이 길러진다.

체육교사 짐 코시(27)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사람의 몸은 저마다 다르고 자기 몸이 어떤가를 이해하는 것" 이라고 말한다.

체육수업에 대한 평가도 이색적이다. 체육교사는 학급 전체의 만족도를 평가하며 개인적인 평가는 하지 않는다.

학생들 스스로 '내 몸의 수준은 이 정도' 라고 평가를 내리게 한다. 체육은 성적(GPA)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묻자 "체육.음악.미술 등은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 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 종목별 기능을 습득하는 중학교 체육

브레이번 초등학교 인근 세주익 중학교. 학생들은 중학교에 와서야 비로소 종목별 기능을 배운다.

6학년의 배구수업. 체육관에 들어선 학생들은 각자 칠판에 적힌 줄넘기 50회, 팔굽혀펴기 15회, 윗몸 일으키기 25회를 한 뒤 두명씩 조를 이뤄 배구공 한개를 들고 모인다.

지도교사는 네가지 평가항목이 적힌 종이를 나눠주고 학생들은 서로 서브와 리시브.토스.스파이크를 평가하며 배구와 친숙해진다.

단 "A는 이런 부분을 잘한다" 라는 긍정적인 평가만 내리도록 한다. 잘못하는 부분은 적지 않는다.

기본기에서부터 시작해 단계별로 수준을 높여간다. 7학년에서는 편을 갈라 실전을 익히고 8학년에서는 반대항 경기를 치르는 식이다. 자연스럽게 탁월한 기량의 학생들이 구별된다.

◇ 학생 운동선수의 시작 고등학교 체육

체육수업과 방과 후 체육활동(한국의 특별활동격)을 통해 자신에게 적합한 종목을 찾아낸 학생들은 고교에 진학한 9학년부터 그 종목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학교 대표선수' 가 되는 것이다.

하트퍼드 시내의 대표적인 공립고등학교인 윌리엄 홀 고교는 남녀 25개의 학교대표팀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대표팀에 뽑힌 학생들은 전문 지도자들의 지도를 받고 학교대항 경기에 참가한다.

물론 경기는 철저히 수업 후에 벌어지며 수업시간을 거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학교측에서는 준대표팀과 1학년팀도 따로 운영한다. 이들은 학교대표는 아니지만 자신이 관심을 가진 종목을 별도로 익힌다.

이 학교 체육실장 엘라자베스 냅은 "전체의 70%가 학교체육활동에 참여한다.

1년 체육예산이 40만달러(약 4억8천만원)나 들지만 주 교육청에서 70%를 지원받고 나머지 30%는 학생들이 부담한다" 며 대규모 체육부 운영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한다.

◇ 프로의 세계를 향해

고교에서 학교대표로 활약하며 기술을 체계적으로 익힌 '학생 운동선수' 는 대학에 진학해서도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프로의 꿈을 키운다. 달링이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