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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 경선 … 비난 쏟아져도 문재인은 “담합 아닌 단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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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통합당 제1차 민생공약특별위원회가 26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문재인 좋은일자리·김한길 보편적복지·이해찬 한반도평화 본부장, 문성근 대표대행, 이용섭 정책위의장, 정세균 경제민주화·박지원 민생안전 본부장. [오종택 기자]

문재인과 이해찬. 민주통합당에서 노무현계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다. 둘이 박지원 최고위원을 원내대표로 추대하고, 이 고문은 대표를 맡기로 했다는 ‘역할분담’ 합의가 드러난 26일 오전 민주당에선 민생공약실천특위가 열렸다. 합의의 주인공인 세 사람뿐 아니라 대선 주자인 정세균 상임고문과 당권 주자 김한길 당선인도 참석했다.

 역할분담과 단결을 얘기하는 ‘문·이·박’을 면전에 두고, 카메라 플래시가 연이어 터지는 가운데 김 당선인이 포문을 열었다. “패권적 발상에서 당권을 몇몇이 나눠 갖기로 한 게 사실이면 아무리 근사한 말로 포장해도 국민 지지를 얻기 힘들다.” 정 고문은 말을 아꼈지만, 이후 본지와의 통화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결정이다.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문재인 고문은 “친노를 포함한 당내 모든 세력이 손잡고 나가자는 취지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는 이후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해찬 고문과 박지원 최고위원이 손을 잡는 것에 대해 담합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담합’이 아닌 ‘단합’으로 오히려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고문은 “우리가 의원 50여 명에게 직접 전화를 다 돌렸는데 대다수 의원들이 정말 잘했다는 반응이었다”고 했다. 박지원 최고위원 역시 “호남·친노를 넘어 정권교체로 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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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당 안팎에선 비판이 쏟아졌다. 서울의 한 3선 의원은 “소모적인 갈등을 없애기 위해 단결하기로 했다는 논리는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체제를 만들면서 한 말과 똑같은 것”이라며 “경쟁을 불필요한 소모로 보는 구시대적 시각”이라고 말했다. 또 원내대표 주자인 이낙연·전병헌 의원은 회의가 끝난 후 연달아 기자회견을 열어 ‘문·이·박 역할분담론’을 담합으로 공격했다. 특히 이 의원은 “특정 대선후보가 관여한 것은 옳지 않다”며 문 고문에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당의 대주주가 모여 원내대표-대표-대선후보까지 규정해 버린 ‘야합’이라는 것이다.

 점심에는 당내 최대 모임인 진보개혁모임이 긴급회의를 열었다. 원혜영 의원이 이끄는 이 모임에는 이인영·우상호·우원식·최규성 의원 등 15명이 참석했다. 이 중 10여 명의 의원은 ‘담합’에 격앙된 분위기였다고 한다. 원 의원은 본지에 “유인태 후보를 끝까지 도와주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해찬-박지원 역할분담의 선의를 이해하지만 동참하지는 않겠다”고도 했다.

 당 대선주자들은 일제히 우려를 나타냈다. 유럽 방문 중인 손학규 상임고문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측근 의원들에게 전했고, 정동영 상임고문은 “총선에서 패한 야당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국민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문·이·박 역할분담’이 당 내분을 가져올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노무현계로 알려진 정세균 고문과 유인태 당선인이 이번 일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유 당선인은 “나는 이번 일을 전혀 몰랐는데, 나를 도와주는 친노가 없다면 나를 더 이상 친노로 부르지 말아 달라”고 했다.

 옛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의 통합 과정부터 감정이 상한 호남 상황도 심각하다. 당 관계자에 따르면 옛 동교동계의 원로인 권노갑 고문이 한 원내대표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지원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박 최고위원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이낙연 의원도 이날 작심한 듯 “전날인 25일 만남에서 박 최고위원이 나를 지원해줄 것이라고 봤는데, 만나보니 그 반대의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민주당의 원내대표 후보 등록 마감일인 이날 박지원 최고위원을 비롯해 이낙연·전병헌 의원과 유인태 당선인 등 총 4명이 등록을 강행했다. 출마선언을 했던 인사 중엔 박기춘 의원만 뜻을 접었다. 당내에선 박 최고위원에 대적하기 위해 나머지 후보들이 단일화를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원내대표 후보들은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면서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익명을 원한 민주통합당의 한 대선주자는 “문·이·박, 3인이 이렇게 뭉치고도 원내대표를 놓치면 이 고문뿐 아니라 문재인 대망론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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