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제동 걸린 KTX 민간개방 속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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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통)기한을 넘길 수는 없다. 그러면 (운영권이) 코레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고민이다. 시간은 코레일 편이다.”

 수서발 KTX 민간 개방을 추진 중인 국토해양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24일 이렇게 고충을 털어놓았다. 당초 2월로 예정됐던 사업제안요청서(RFP) 공개를 연기하며 “총선이 끝나면 무조건 추진한다. 국회 동의를 받을 필요 없다”며 자신만만해 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국토부의 달라진 기류는 지난 19일 RFP 정부안 공개 때도 확인됐다. 당시 국토부는 사전설명 자료에 “상반기 중 제2사업자(민간 업체)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회견 자리에서 나눠준 최종 자료엔 이 문구가 빠졌다. 주성호 국토부 2차관은 “명확한 타임테이블을 가지고 있다면 속시원하겠지만, 큰 정책 스케줄을 딱 못박고 하는 게 한계가 있다”는 애매한 답변만 내놓았다.

 국토부가 이렇게 달라진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정치권의 반대가 크다. 민주통합당은 KTX 민간개방 계획이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대기업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계획 백지화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 반응도 냉담하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며 정부 추진계획을 사실상 반대했다.

 특히 유력 대권후보인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23일 발언이 결정타였다. 박 위원장은 이날 평창동계올림픽준비위를 방문한 자리에서 “지금 같은 고속철도(KTX) 민영화에는 반대한다.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보완책을 마련하기 위해 19대 국회로 넘겨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부 관계자는 “민간개방이 국회 동의를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현재 여당은 물론 미래에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 인사들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참여를 고려하는 기업들도 이 점을 신경 쓰는 눈치”라고 덧붙였다.

 우호적이지 않은 국민 여론도 걸림돌이다. 국토부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 1200명 중 65%가 KTX 경쟁체제 도입에 찬성했다. 하지만 신규 운영자 선정에 대해 ‘잘 안다’고 답한 사람은 7.8%에 불과했다. 실제 운영자 선정이 시작되면 어떤 여론이 형성될지 알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국토부는 줄곧 2015년 1월 개통을 위해선 상반기 내 운영업체를 선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승무원교육, 시운전 등 안전과 직결된 준비 시간을 감안해서다. 서광석 한국교통대학 교수는 “ 7월까지 업체를 선정하지 못하면 개통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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