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사가 검찰 조사 불응한 ‘기소청탁’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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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기소청탁’ 사건이 관련자 전원을 처벌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그제 검찰은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 김재호 판사가 나 전 의원을 비방한 네티즌을 기소해달라고 청탁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나 전 의원 부부를 무혐의 처리했다. ‘나는 꼼수다(나꼼수)’에서 의혹을 제기했던 시사IN 기자 주진우씨도 같은 처분을 받았다. 법적인 절차가 모두 끝났지만 씁쓸한 뒷맛은 오히려 강해지는 느낌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박은정 검사가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 내용이 사실인지였다. 박 검사는 진술서에서 “김 판사가 2006년 1월 전화를 걸어 ‘네티즌 고소 사건을 빨리 기소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김 판사 등을 조사한 뒤 내린 결론은 “김 판사가 박 검사에게 전화는 했지만 기소청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박 검사가 과장된 주장을 했다는 얘기인데, 정작 당사자인 박 검사에 대한 소환 조사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박 검사가 조사에 불응해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인의 경우 소환에 불응해도 강제로 조사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현직 검사로 있으면서 검찰 조사에 불응한다는 건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검찰청법이 검사에게 범죄 수사와 기소 등의 권한을 준 것은 ‘공익의 대표자’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 지위에 있는 검사마저 조사를 거부하는 마당에 누구에게 수사 협조를 요청할 수 있겠는가. 검사 한 명 설득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로 수사를 종결지은 검찰 조직 역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나꼼수’ 출연진이 조사에 일절 응하지 않은 것도 그렇게 잘못은 아니라는 주장에 뭐라 답할 것인가.

 이번 수사엔 법을 다루는 판·검사 간에 작은 짬짜미(부당거래)라도 있어선 안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 결과를 보며 우리는 또다시 법조인들의 삐뚤어진 특권의식을 확인하게 된다. 검찰에서 소환장 하나 날아와도 전전긍긍할 많은 국민에게 상대적 박탈감만 안긴 셈이다. ‘그들만의 리그’가 계속되는 한 한국의 법치주의는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