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패션디자이너 "마음의 눈으로 그려요"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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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한 시각장애인 매이슨 유잉이 상상으로 디자인한 스케치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LA타임스 제공

"눈으로 볼 순 없지만 마음으로 상상해 그려요."

시각장애인으로 성공한 패션디자이너에서 이제는 할리우드를 노크하고 있는 매이슨 유잉(30) 제작자의 감동적인 스토리가 23일 LA타임스에서 대서특필됐다.

유잉은 악몽같은 청소년기 시절을 극복하고 파리에서 성공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6개월간 그는 할리우드에서 10대 코미디와 TV 드라마 제작에 힘을 쏟고 있다고 LAT는 전했다.

카메룬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카메룬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유잉은 성장기는 프랑스에서 보냈다. 그의 인생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이다.

어머니는 재봉사이자 드레서 메이커였으나 그가 4살 되던 해 살해됐다. 유잉은 좀더 자라면서 패션쇼에서 나오미 캠벨 같은 톱모델의 패션쇼를 즐겨 보며 디자이너의 꿈을 가졌다.

"나는 어머니의 발자국을 따라 패션분야에서 일하기로 결심했어요."

아버지와 떨어진 유잉은 카메룬에서 증조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6살이되자 파리 인근의 친척집에 맡겨지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삼촌 집에서 있는 7년 동안 심각한 학대를 경험했다. 조금만 잘못해도 벨트로 온몸을 맞았고 팔은 촛불로 지져졌고 책을 들고 오랜 시간 벌을 섰다.

"어떤 때는 삼촌이 새벽 4시에 깨워 집안 청소와 설겆이를 시킬 경우도 있었어요. 두려움으로 침대에 오줌을 싸면 내 머리를 욕조에 처박기도 했지요. 어느 날은 내 눈 안에 따가운 안료를 집어 넣기도 했어요."

여러번 맞아 자주 기절을 하기도 했는데 한번은 3주간 뇌사 상태로 병원에 있기도 했다. 그 사건 이후 유잉은 실명이 됐다. 의사에 따르면 안료는 아프리칸 핫 소스로 쓰이는 매운 가루로 안구 신경을 태워버리거나 시세포를 죽이는 것과 관계가 있다.

마침내 프랑스 당국은 유잉을 삼촌 집에서 격리시켜 몇 군데의 고아원으로 보냈다. 그후 대학에서 물리치료를 공부했으나 그는 결국 어릴 적 꿈이었던 패션 디자인을 추구하기로 마음 먹었다.

단지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현실화시킨다는 것은 상당한 도전이었다. 그는 디자인을 스케치할 수 있는 아티스트를 고용해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불러주고 정교한 것을 그리도록 했다. 실명이 되면서 만져만 봐도 원단의 질감을 구별할 수 정도로 촉각이 발달해진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다인종 만화 캐릭터인 '베이비 매디슨'을 다양한 티셔츠 버전으로 만들면서 히트를 쳤다. 아기의 까만 피부와 푸른 눈 금발 머리카락의 외모가 모든 사람에게 관용과 사랑을 의미한다고 그는 말했다.

유잉은 카툰 캐릭터를 '매디슨의 모험'이라는 제목아래 비디오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이를 배우가 연기하는 두개의 TV 시리즈물로 만들 생각이다.

LA남부 버몬트 광장에서 '에리나 벨라'라는 10대 드라마를 시험 촬영했고 10대 코미디 시리즈 '미키 붐'도 촬영을 시작했다.

유잉은 정상도 하기 쉽지 않은 패션 영역에서 성공했고 이제는 영상에서 도전을 즐기고 있다.

최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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