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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리포트’처럼 독과점 횡포 미리 막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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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위라는 조직이 꼭 필요한 곳에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 원칙을 묻는 질문에 “국정철학에 충실하고 가급적이면 신속하게 성과를 내는지를 보고 사람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지난 한 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물가와 동반성장 전선(戰線)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뒀다. 유통업체 판매수수료 인하가 대표적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수수료 인하는 30여 년 만에 처음”이라며 “유통분야 동반성장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고 환호했다. 그러나 ‘시장경제 지킴이’인 경쟁당국이 시장가격에 직접 개입했다는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 찬사와 비판이 공존하는 것은 공정위가 그만큼 적극적으로 일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하는 공정위’의 중심엔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있다. 그를 16일 서초동 집무실에서 인터뷰했다.

 - 유통 수수료(가격)에 직접 개입했다는 비판이 있다. 공정위 실무자조차 “예전에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길을 간다”고 하던데.

 “대형 유통업체가 판매수수료 인하 대상업체나 인하 수준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했다. 공정위가 시장가격에 직접 개입했다는 비판은 부적절하다.”

 - 지난해 백화점과 ‘자율합의’ 모양새를 갖췄지만 불협화음도 있었다.

 “국내 유통시장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이 80%를 웃도는 독과점시장이다.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거래가 시장논리가 아닌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 시장이 너무 빠르게 독과점으로 가고 있다. 시장 실패를 우려할 정도다. 정책기관으로서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 개입은 가급적 최소화하면서 대화하고 설득했다.”

 - 수수료를 내리라고 압박하는 대신,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법 위반을 ‘법대로’ 처벌하면 되지 않나.

 “공정위는 법 위반행위를 적발해 제재하는 기관이기도 하지만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을 사전에 막는 것도 본연의 임무다.”

 독과점업체의 횡포를 ‘사전에’ 막을 수 있을까. 답변을 들으면서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떠올렸다. 범죄예방시스템이 미래에 일어날 범죄를 예상해 막는다는 내용이다. 김 위원장에게 이 영화 얘기를 꺼내자 “내 생각하고 비슷하다”며 웃었다. 그는 “컵 안의 물을 엎지른 사람을 혼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물을 주워담을 순 없다”며 “모니터링 기능을 강화해 예방에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 물가 잡는 데 활약이 컸다.

 “공정위 30년 역사를 보면 그때그때 강조점이 달랐다. 사회와 국민 요구의 우선순위가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바로 물가다. 그렇다고 가격을 올릴 요인이 있는데 무리하게 찍어 누르면 부작용이 있다. 다만, 짜고 올리거나 과도하게 인상하는 건 공정위가 나서서 보겠다. ”

 - 거시정책의 실패를 미시적으로 공정위가 메운 것 아닌가.

 “어느 쪽에서 실패했다는 것인가. 동의 못한다.”

 - 지난해 처리한 사건들의 법원 승소율이 전보다 떨어지는 건 아닐까(과거 공정위 승소율은 70% 안팎이었다).

 “승소율은 평균 이상으로 유지될 거다. 직원들에겐 ‘앞으로 승소율 100%를 목표로 해서 가라’고 한다. ”

 -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효과와 관련해 가격 점검을 하기로 했는데.

 “23개 관세 인하 품목을 매주 점검키로 했다. 그중에서 잘 안 내려가는 건 왜 안 내려가는지 집중적으로 유통구조를 들여다볼 거다. 독점 수입업체나 국내 유통사의 불공정행위도 함께 감시할 거다. FTA 효과가 소비자에게 최대한 신속하게 갈 수 있게 하겠다.”

 인터뷰 중 그는 스스로를 ‘시장경제론자’라고 밝혔다. 박사학위 논문도 (시장과 독점을 연구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인) 산업조직론이었다고 했다.

 - (공정위원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된 첫해인 1996년 위원장을 지낸) 김인호 전 공정거래위원장 같은 분도 자신을 시장경제론자라고 했다. 두 분이 같은 시장경제론자인가.

 “시장경제론자도 각자 캐릭터가 있다. 난 완전경쟁에 가깝게 시장을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완전경쟁은 현실적으로는 드물다. 시장경제가 완전경쟁 쪽으로 갈 수 있게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해야 한다. ”

 화제를 소비자로 돌렸다. 김 위원장 스스로 ‘미스터 컨슈머’라고 불러달라고 할 정도로 올해 그의 관심은 소비자다. 지난 3월 말 공정위가 출범시킨 ‘한국형 컨슈머 리포트’는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올해 마무리할 현안으로 동반성장과 함께 소비자 문제를 꼽았더라.

 “많은 분이 공정위는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제재하는 곳으로만 아는데, 올해는 소비자 주권 확립에 앞장서는 기관이라는 걸 확실히 인식시키는 한 해가 될 거다. 지난해엔 동반성장이 워낙 다급한 문제라서 소비자 쪽을 미처 못했다. 올해는 공정위가 양쪽에서 다 따뜻한 균형추 역할을 하는 기관이 될 거다.”

 - 컨슈머 리포트가 아직 초기라서 객관성과 전문성 시비가 있다.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컨슈머 리포트 발표 전에 관련 업체가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충분히 주겠다. 업체와 전문가의 평가의견을 함께 공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특히 품질시험은 공신력 있는 국가공인시험기관에서 실시할 거다.”

 지난 총선에서 여야가 앞다퉈 쏟아낸 대기업 정책은 대부분 공정위와 관련돼 있다. 김 위원장은 이런 정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 여야의 총선 공약 중 걱정되는 부분은 없나.

 “여러 번 밝힌 대로 출자총액제한제도엔 명백히 반대한다. 실효성이 없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대기업에 족쇄만 채우는 꼴이다. 순환출자 금지도 총수의 독단적 경영행태를 억제하는 효과는 크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결국 중소기업 영역과 골목상권을 대기업이 침해하는 것 아니냐. 이제 재벌 개혁은 문제해결에 맞는 맞춤식, 디지털 방식으로 해야 한다. ”

 - 하도급법 위반에 징벌적 3배 손해배상을 도입하고, 담합행위에 집단소송제를 도입한다는 새누리당 공약은 어떤가.

 “공정위가 기업의 불공정거래를 제재해도 정작 피해 당사자에겐 아무 혜택도 없다는 비판이 있다. 실질적으로 피해를 구제하는 차원에서 이 제도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 깊이 있게 검토할 계획이다.”

 -대형마트 영업규제의 경우 소비자 권익이나 지자체의 경쟁제한적 조례라는 측면에서 공정위가 고민할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대형마트 규제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걱정이 있다. 앞으로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유통법 조례가 각 지자체에서 제정될 거다. 조례가 그 취지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그 부분은 앞으로 지켜보겠다.”

서경호·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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