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최시중 검은 돈’ 한 줌 의혹도 남기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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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검찰과 권력은 늘 긴장 관계다. 정권 초기엔 검찰이 몸을 굽히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임기 말이 되면 실세를 향해 수사의 칼날이 다가왔다. 문제는 얼마나 정치적 고려나 뒷거래 없이, 한 줌의 의혹도 남지 않게끔 제대로 수사하느냐일 것이다.

 소문으로만 나돌던 현 정부 실세의 검은 돈 의혹에 대해 대검 중수부가 수사에 나선 것은 정권교체기가 가까워졌음을 말해주고 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서울 양재동의 옛 화물터미널 부지 개발 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거액을 수수한 혐의로 출국금지됐다.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 다른 여권 인사도 이번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행사 전 대표 이정배씨는 검찰에서 “건설업체 사장을 통해 수십억원을 최 전 위원장 등에게 건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에 최 전 위원장은 “일부 자금을 지원받은 사실은 있지만 인허가 청탁 대가는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여론조사 비용 등으로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해명은 믿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 전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2005년부터 현 정부 출범 후까지 이씨와 10여 차례 만났다. 인허가에 목을 매던 시행사 대표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거액을 줬을 가능성은 없다.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공언하는 사이 이른바 ‘실세’들 주변에서 크고 작은 의혹들이 제기돼왔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은 보좌관의 비리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7억원의 뭉칫돈이 나왔다. 이 의원은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던 돈”이라고 석연치 않은 설명만 내놓았다. 이 의원의 ‘50년 지기(知己)’이자 ‘MB의 멘토’로 불렸던 최 전 위원장은 최측근인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관의 뇌물수수 의혹 수사로 지난 1월 위원장 직을 사퇴했다. 이런 의혹들이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었던 건 검찰 수사가 뇌관을 건드리지 못한 채 비켜갔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의원에게서 7억원의 출처에 관한 소명서를 제출 받았을 뿐 소환 일정도 잡지 않은 상태다. 검찰은 민간인 불법사찰에 박 전 차장이 개입했다는 정황에 대해서도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은 “가혹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야권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반면 여권 실세에 대해선 수사를 질질 끌며 정치적 생명을 연장해주는 듯한 인상을 줬다. 이번 사건을 놓고 벌써부터 “대선자금으로 확산되는 상황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거악(巨惡)과 맞선다”는 중수부의 모토가 빛 바랜 표어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적당히 여기저기 칼을 대는 선에서 끝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제라도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지는 검찰의 자세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