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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책의 흐름] 인문학과 TV는 착떡궁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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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출판의 전반적 불황 속에 김용옥과 이윤기의 선전(善戰) 은 발군이었다.

동양철학자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 시리즈(전3권) 와 '도올 논어1' (이상 통나무) , 그리고 소설가이자 신화연구가인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창해, 전5권)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웅진닷컴) , 여기에 더한 단편집 '두물머리' (민음사) 출간은 모두 올 한해의 저술이다.

물량의 규모만큼 괄목할 만한 것이 응전의 방식. 오늘의 인문학자가 어떻게 변화된 시대와 교감을 해야 하는지를 가늠케 하기 때문이다.

즉 인문 상품의 제작.유통과 관련해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징후이기도 하다.

고급독자층 위주의 이윤기와 또 달리 김용옥은 아줌마 팬을 포함한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편차는 없지 않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재야에서 내공을 쌓은 사람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이들의 성공은 우선 제도권 연구자들에 대한 통렬한 문제제기다.

대학의 인문학 강의실은 텅텅 비어가는 것과 달리 제도권 밖으로 사람들이 몰릴 때 이들은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각각 성공한 것이다.

제도권에서 고전의 자구(字句) 와 씨름하는 연구자들의 노력을 폄하할 순 없지만, 김용옥.이윤기는 현실과 정면대결하는 방식으로 성취를 보인 것이다.

즉 문사철(文史哲) 을 아우르는 지식, 고금(古今) 을 주유(周遊) 하며 풀어내는 소화된 언어만이 성공의 원동력은 아닌 셈이다.

여기에는 EBS와 KBS라는 전파매체의 효과가 지원군이었을 것이다. 인문학과 텔레비전의 만남은 디지털 기술과 텔레비전의 융합만큼이나 극적이다.

대중매체의 역기능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그 기능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대중문화 시대에 인문학도가 개발해야 할 주요한 영역임을 보여준 실례다.

각자의 약진과 관련해 미시적으로 들여다 볼 측면이 있다. 먼저 김용옥. 그의 평가가 높은 것은 '노자와 21세기' 당시의 풀어진 서술과 달리 '도올 논어1' 의 완성도에 대한 상찬(賞讚) 이다.

따라서 밀도 있는 저술의 연속적 출간만이 그가 사회적 장수(長壽) 를 유지하는 길일 것이다.

이윤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올 한해의 대박이 곧 전성기는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문단 데뷔 이후 20년 가까운 익명 상태를 벗어난 그가 '2000년 작은 성공' 에 취하지 않는 것은 곧 우리 사회의 지적 자산을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말과도 통한다.

그것만이 풍문으로 유포되는 인문학의 죽음, 혹은 문학의 위기와 상관없는, 의연한 문화권력을 요구하는 사회적 요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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