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뒤숭숭한데 집안싸움 벌이는 여자농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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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근 여자대표팀 감독

여자농구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처음 위험신호가 감지된 건 지난 13일이다. 여자농구팀 신세계의 해체 소식이 전해졌다. 15년간 여자농구팀을 운영한 신세계는 ‘해체를 결정했다’는 내용의 짧은 보도자료 하나로 오랜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금융권 위주로 운영되는 여자농구계에서 한계를 느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곁들였다. 코트에서 땀을 흘린 선수들, 열과 성을 다해 응원한 팬들은 철저히 소외됐다.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농구팬들을 놀라게 하는 뉴스가 꼬리를 물었다. ‘바스켓 퀸’ 정선민(39)이 19일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여자농구의 간판스타가 퇴장한다는 소식에 많은 농구팬들이 안타까워했다.

 같은 날 터져 나온 여자농구대표팀 감독 교체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대한농구협회는 2009년 이후 줄곧 대표팀을 이끈 임달식(48) 신한은행 감독을 대신해 이호근(47) 삼성생명 감독을 선임했다. 이 감독은 덕장(德將)으로 통한다. 평도 좋다. 문제는 교체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임 감독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지난해 나가사키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에서 연속 준우승을 거두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세대교체를 단행하면서도 아시아 최강 중국을 상대로 접전을 펼쳐 가능성도 인정받았다. 신한은행을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통합 6연패의 반열에 올려놓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농구협회는 뚜렷한 이유 없이 ‘변화가 필요하다’며 임 감독을 끌어내렸다.

 이와 관련해 농구계의 한 인사는 “과거 임 감독에게 여자대표팀 코치로 자신을 발탁해 달라고 청탁했다가 거부당한 정미라 농구협회 부회장이 사령탑 교체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사실이라면 명백한 권력 남용이다. 여자농구대표팀이 런던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으려면 6월 터키에서 열리는 최종예선에서 12팀 중 5위 안에 들어야 한다. 아직 시동도 걸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잡음이 들린다.

 여자농구계는 이제부터라도 흐트러진 분위기를 다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신세계 해체의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것이 먼저다. 선수들이 직장을 잃고 실업자로 전락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 신세계와 여자프로농구연맹(WKBL)이 공동으로 책임을 느껴야 할 부분이다. 여자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려야 한다. 잘못이 있었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도 물어야 한다. 지금 여자농구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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