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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돌아 요리 한 길 … 세 자매의 맛·멋·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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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테이블’에서 건강한 요리를 선보이는 세 자매 김윤정·수정·은희씨(왼쪽부터).

고향인 대전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던 맏언니 김수정(43·서초동)씨, 영양학을 전공하고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자리를 잡아가던 셋째 윤정(38·잠원동)씨, 공대를 졸업하고 웹디자이너 일하던 넷째 은희(35·방배동)씨.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각자 다른 일을 하던 세 자매가 지금 ‘요리’라는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맛있는 요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그린테이블’의 세 자매를 만났다.

송정 기자 , 사진=황정옥 기자  

영양사·웹디자이너·작은 가게 하다 공통 분모 찾아

각자 다른 일을 하던 세 자매가 ‘요리’라는 공통 분모를 찾은 것은 2004년이다. 가장 먼저 요리에 발을 디딘 이는 윤정씨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있었던 윤정씨는 요리가 좋아 가정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매일 칼로리와 영양을 따지는 수업이 재미없었다. 졸업 후 영양사로 일하던 26세, ‘마흔 살까지 영양사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다른 일을 찾았고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푸드스타일리스트 일을 시작했다. “1주일에 3일은 집에 못 들어가고 손발이 다 트고 몸무게도 43kg까지 줄 정도로 고생했지만 힘든 줄 몰랐어요.” 그렇게 1년6개월을 지내고 자신만의 작업실을 냈다. 9평 남짓한 원룸 작업실에서 쉴 틈 없이 일했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일거리가 쏟아졌다. 그때 큰언니 수정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윤정씨는 “요리라는 일이 재미있는 반면 혼자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므로 외롭다”고 말했다. 다섯 남매 중 맏이였던 수정씨는 어린 시절부터 손이 빨랐고 엄마의 손맛을 닮아 요리 실력도 제법이었다. 맏이답게 포용력도 있다. 윤정씨는 수정씨라면 믿고 함께 일할 수 있었다. 마침내 2004년 수정씨는 운영하던 가게를 접고 서울로 올라와 요리 일을 시작했다. 폭넓은 요리 지식을 쌓기 위해 컨설팅을 공부했다.

 미국 뉴욕의 요리 명문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로 유학을 떠났던 넷째 은희씨가 2006년 귀국하면서 세 자매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사실 은희씨가 요리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것도 언니들 덕분이다. 공대 졸업 후 박물관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은희씨가 유학을 결심했을 때 부모님은 강력히 반대했다. 몸이 약한 막내딸이 멀리 타국에서 고된 요리 공부를 하겠다니 부모님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언니들이 나서 부모님을 설득한 덕분에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3년 동안 은희씨는 요리에 푹 빠졌다. CIA를 졸업한 후 뉴욕에서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의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세계적인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파크애비뉴 카페’ ‘블레이’ ‘크루’의 주방에서 일할 수 있었다. 은희씨의 귀국에 맞춰 방배동에 푸드 스튜디오이자 아카데미인 ‘그린테이블’을 열었다.

서로에게 멘토이자 멘티 … “요리가 맛있는 호텔 갖는 게 꿈”

세 자매에게 ‘그린테이블’은 건강한 요리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자매의 요리는 집에서 된장과 고추장을 담고, 카스테라를 굽고, 직접 간 팥으로 찐빵을 만들어주던 엄마의 솜씨를 빼닮았다. 요리수업과 푸드스타일리스트 강좌, 케이터링 의뢰, 푸드 컨설턴트 등 다양한 일들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수정씨는 푸드컨설턴트를 맡아 레스토랑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메뉴 개발과 레시피·요리를 가르친다. 윤정씨는 푸드스타일리스트 수업과 방송광고 촬영 등에 필요한 푸드스타일링을 맡는다. 은희씨는 2009년 방배동에 문을 연 ‘그린테이블’이라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뉴욕에서 배운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각자의 일에 바쁜 자매지만 규모가 큰 케이터링(조리된 음식을 제공)이 있는 날이면 힘을 모은다. 주로 윤정씨가 앞장서 일을 만든다. “언니가 벌인 일을 뒷수습한다”고 말하지만 은희씨와 수정씨는 즐겁기만 하다. 각자 배우고 경험한 것을 나눈다. “저는 서양 요리법을 모를 때가 있는데 남들한테 묻기 힘든 것도 동생에게는 편하게 물어보죠.” 윤정씨의 말에 은희씨는 “한창 요리하고 있을 때 전화한다”고 투정 부리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들 자매는 서로가 서로의 멘토이자 멘티다. 누군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는 조언하는 것도, 힘들어할 때 격려하는 것도 자매의 몫이다.

 자매의 요리에는 건강이 담겨 있다. 주말마다 전국 유기농 농장을 돌며 제철 과일과 채소를 직접 수확한다. 퇴직 후 작은 농장을 꾸리는 아버지의 지원도 든든하다. 아버지 농장에서 자란 유기농 보리수와 고구마·블루베리·매실·마는 자매에게 보물이다. “앞으로 건강한 요리를 계속하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또 하나의 소원이 있다. 요리를 위한 호텔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은희씨의 바람에 언니들은 손사래를 치지만 그린테이블의 시작이 그러했듯 자매가 힘을 합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은희씨는 “다양한 컨셉트의 레스토랑을 열고 나아가 요리가 맛있는 호텔을 열고 싶다”며 “호텔의 요리는 모두 건강한 식재료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프렌치 레스토랑 ‘더 그린 테이블’

함지박 사거리에서 방배중학교로 올라가는 언덕에 자리한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세 자매의 막내이자 세계적인 요리 학교 CIA에서 공부하고 온 김은희 셰프가 상주한다. 제철 재료에 여러 가지 퓨레로 맛을 더한 것이 이곳 요리의 특징이다. 퓨레는 당근·감자·단호박 같은 천연재료를 은근한 불에서 오랜 시간 졸여내 만드는 농축베이스로 알록달록 고운 색상에 눈이, 부드러운 맛에 입이 즐겁다. 자극적인 조미료 대신 퓨레와 천연재료로 맛을 내 속이 편하다. 테이블 네 개가 놓인 1층에서는 코스 요리를 선보인다. 계절에 따라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메뉴를 내놓으며 예약제로 운영한다. 푸드스타일리스트의 작업실을 컨셉트로 꾸며진 2층에서는 브런치와 단품 메뉴를 맛볼 수 있다. 계절 수프와 파스타, 리조또, 한우 채끝 구이, 프렌치 프라이, 타르트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계절별로 농장에서 직접 따 온 과실로 만든 에이드와 차를 판매한다.

수비드로 익힌 ‘한우 채끝 구이’

한우 채끝을 저온조리법인 수비드로 익히고 감자와 단호박 퓨레를 곁들인 요리다. 버섯 5종류를 볶아서 곁들인다. 고기와 버섯을 함께 먹으면 체내에 콜레스테롤이 쌓이는 것을 막아준다. 건강까지 생각한 김은희 셰프의 배려심이 돋보인다.

버블랑 소스에 익힌 ‘랍스터’

뉴욕의 레스토랑 ‘블레이’에서 일할 때 익힌 랍스터 조리법을 담은 메뉴다. 살짝 데쳐 껍질을 벗긴 랍스터를 버블랑 소스에 넣어 부드러운 맛을 살렸다. 랍스터 머리를 고은 소스와 컬리플라워로 만든 퓨레를 함께 낸다. 영업 시간 오전 11시~오후 3시, 오후 6시~10시. 월요일 휴무. 주소 서초구 방배동 797-9 (함지박 사거리와 방배중학교 사이)

문의 02-591-26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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