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왕망(王莽)과 유언비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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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의 해임이후 중국당국은 유언비어(流言蜚語)와 전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중국 공안이 “베이징 내란설”을 유포한 혐의로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하고 관련자를 체포하였다. 중국에서 “악성종양”에 비유되는 인터넷 유언비어(루머)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역사에서 권력교체기에는 요언(謠言)이라고 하는 각종 루머가 정권을 흔들기도 하고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루머에는 민의가 들어 있기 때문에 권력자들은 루머관리에 특별한 신경을 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중국 최초의 유언비어사건은 주(周)대에 나타난다. 주를 창건한 무왕(武王)이 죽자 그의 어린 아들이 성왕(成王)이 되고 무왕의 둘째 동생 주공 단(周公 旦)이 섭정을 하게 된다. 무왕의 나머지 동생들은 주공이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려고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반란을 일으켰다.
유방(劉邦)이 한(漢)을 세운지 200년이 지나 왕망이라는 루머의 달인이 나타난다.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으나 그의 고모가 원제(元帝)의 황후가 되자 상황이 달라진다. 황후의 아들 성제(成帝)가 즉위하자 황후의 오빠이면서 왕망의 백부 왕봉(王鳳)이 대사마(총리)가 되어 실권을 잡았다.

총명한 왕망은 왕봉의 신임을 받았다. 왕봉이 죽자 백부를 이어 나이 38세에 대사마가 된 왕망은 황후족벌인 왕씨 집안을 이끌고 나가는 실력자가 되었다. 성제가 죽고 그의 조카 애제(哀帝)는 즉위하자마자 세도가 왕씨 외척을 멀리 한다. 왕망은 일시 세력을 잃었다. 그 후 애제가 죽자 왕망은 쿠데타로 다시 대사마가 되고 아홉살의 평제(平帝)를 옹립하고 자신의 딸을 황후로 보낸다. 그의 야심은 평제마저 독살하고 두살된 유영(劉?)을 다시 옹립 자신이 섭정하면서 스스로 황제가 되고저 하였다.

그 무렵 “왕망은 황제가 되라“고 쓰여진 바위가 여기 저기 나타나고 새 황제의 출현을 의미하는 우물이 발견되었다. 왕망이 만들어 퍼뜨린 루머는 민심을 현혹하였다.

왕망은 하늘의 뜻이라면서 유영을 몰아내고 스스로 황제가 되고 국호를 “신(新)”으로 바꾸었다. 그는 유교의 경전을 근거로 개혁정치를 하였으나 민심을 얻는데 실패하였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후 수도 장안(長安)에서 이상한 루머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내려 온 “황룡이 큰 산에 부딪쳐 죽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황룡을 보겠다고 몰려 다녀 나라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황룡은 물론 황제 왕망을 말한다.

왕망은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색출한다면서 수많은 사람을 잡아들이고 죽였다. 그러나 루머의 진원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민심은 왕망을 떠나고 그를 찾아 온 것은 전국각지에서의 반란과 측근의 배신이었다. 왕망은 자신의 황궁에서 피살된 시체로 발견된다. 루머로 천하를 얻은 왕망은 15년 만에 루머 때문에 천하를 잃은 것이다. 유방의 후손인 유수(劉秀)가 즉위하여 광무제(光武帝)가 되어 한(漢)을 이었다. 왕망이후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루머관리에 더욱 힘을 쓰게 되었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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