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이 반이던 우리 교실, 욕이 사라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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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에선 ‘문디 자슥’이라고 말하면 욕일까, 아닐까.” 지난달 28일 경기도 화성의 대안학교인 두레자연고(高)에서는 2학년 학생들의 야외 국어수업이 한창이었다. 신재영(42·사진) 교사가 ‘욕’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의 물음에 학생들은 “친근함의 표시다”, “욕이다” 등 의견이 분분했다. 20명 모두로부터 의견을 들은 뒤 신 교사가 내놓은 답은 “듣는 사람이 기분 나빴다면 욕이 된다”였다.

 그는 이어 욕의 어원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대부분 성(性)과 관련된 비유거나 부모를 비하하는 뜻이었다. 고성욱(17)군은 “욕의 어원을 알고 나니 너무 충격적이라 혐오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이날 수업은 신 교사가 지난해 2학기부터 시작한 ‘욕설 상호평가제’를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욕의 어원과 나쁜 점 등을 알려준 뒤 한 학기 동안 욕을 얼마나 썼는지를 평가해 시험점수(100점 중 10점)에 반영하는 제도다. 평가는 학생들이 학기말에 직접 한다. 한 학년이 40명가량이어서 서로서로 욕을 얼마나 하는지 알기에 가능하다. 욕 사용 정도에 따라 ○, △, ×를 주는 방식이다.

 1999년 문을 연 두레자연고는 정규학력이 인정되는 대안학교로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등 학교 부적응 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대화보다는 욕으로 상대를 이기려 하기 일쑤였고 결국 싸움까지 이어졌다. 신 교사는 욕만 줄일 수 있다면 그만큼 학교폭력도 감소된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이 학교에서만 13년 동안 근무하면서 별 방법을 다 써봤다. 욕을 줄인 학생에게 상장을 주기도 하고 ‘충격요법’으로 아이들에게 직접 욕도 했다. 하지만 교사 앞에서만 욕을 참을 뿐 또래끼리는 별 효과가 없었다.

 고심 끝에 학생들이 서로를 평가하면 더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욕설 상호평가제’를 만들었다. 성과는 조금씩 나타났다. 3학년 김예인(18)양은 “그동안 선배들이 후배 이름을 부를 땐 꼭 욕이 들어갔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신 교사는 어른들에게 아쉬운 점이 많다고 했다. 욕설과 막말 문화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국회의원 후보들의 막말이 논란이잖아요. 순간적인 인기를 위해 내뱉은 말을 아이들이 고스란히 듣고 배운다는 걸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이한길·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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