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치적 이성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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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총선의 날이 밝았다. 선거 캠페인이 끝나고 이제 유권자의 선택만 남았다. 짧게는 지난 보름간의 선거운동, 길게는 지난 연말 한나라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민주당이 야권연대에 나선 이후 총선을 향해 달려온 각 정당의 대장정에 대한 최종 평가를 내려야 할 순간이다.

 이번 총선 캠페인 역시 높은 점수를 주기엔 모자란 점이 너무 많았다. 각 정당들은 나름 새로운 정치를 내세웠지만 공천 과정에서부터 구태(舊態)를 재현했다. 한나라당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경제민주화 공약을 앞장세웠지만 공천 과정에선 결과적으로 친박(親朴) 중심으로 흘렀다. 민주당 역시 외연을 넓혀 민주통합당으로 거듭났다고 하지만 공천 과정에서 일부 친노와 486 운동권 출신으로 쏠렸다. 양당은 정당민주화 차원에서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하는 ‘상향식 공천’을 하겠다는 약속을 모두 지키지 않았다.

 부적절한 공천은 캠페인 막바지까지 논란과 혼선을 빚고 있다. 민주당 후보의 막말 파문에 자질 시비가 이어지고 있으며, 새누리당 후보의 논문 표절과 성폭행 미수 사건, 현직 교사인 진보당 비례대표 후보의 자격시비 등이 선거판을 흐리고 있다. 이런 과정은 모두 구태 정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행태들이다. 그래서 유권자 의식조사를 해보면 ‘기권’을 택하는 사람의 절반이 “투표해도 바뀔 것 같지 않아서”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이런 정치판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유권자의 투표다.

 투표하는 것만으로 정치판을 바꾸기는 힘들다. 정치판을 바꾸는 진정한 투표는 냉정한 이성적 판단이어야 한다. 물론 난투극 현장에서 이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난 캠페인 과정에서 숱한 의혹과 비난, 비방과 허위 사실까지 쏟아졌다. 이런 모든 과정이 진영과 감정의 논리에 왜곡됐다.

 투표장으로 향하기 전 차분하게 이성적 판단을 해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집으로 보낸 선거공보를 먼저 살펴보자. 선관위에서 운영하는 정당·정책정보시스템(http://party.nec.go.kr)에 들어가 보자. 유권자가 정책과 인물을 꼼꼼히 따져볼 때 정당들도 제대로 된 인물과 정책을 내놓는다. 정치판의 변화를 기다리기 이전에 정치판의 변화를 이끌겠다는 유권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 의지는 냉정한 한 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