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농어촌 임신부에게 분만실을 제공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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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농어촌 지역에서 의사가 태부족이다. 시골에서 일하겠다는 의사를 구할 수 없어 지역 병원 운영이 힘든 실정이다. 지금까지는 공중보건의를 배치해 의료취약지역의 부족 인력을 메워왔지만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도입과 여의사 증가로 올해의 경우 공보의 인원이 500명 가까이 줄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특히 농어촌 산부인과는 분만실에서 일할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아기 받기를 포기하는 병원이 속출하고 있다. 어제 날짜 본지 보도에 따르면 인구가 5만6786명(3월 기준)인 전남 영광군의 경우 군내 유일의 분만실이 지난 6일 문을 닫았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그만두면서 후임자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료사고 위험률이 높고 24시간 매어 있어야 하는 분만실 근무 의사의 일반적인 애로에 시골이라는 지역적 한계가 더해지면서 아기를 받아줄 산부인과 전문의를 구하기가 갈수록 어렵다고 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분만하는 산부인과가 없는 분만 취약 시·군·구가 전국에 54곳이나 된다. 그나마 대도시나 수도권의 경우 임신부들이 인근 지역 병·의원을 이용할 수 있지만 농어촌 지역은 사정이 다르다. 임신부가 만삭의 몸을 이끌고 대도시로 먼 길을 이동해 출산하거나 산전 진찰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응급 상황이라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찔하다.

 상황이 이러니 그동안 사회적 요구에 따라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온 출산장려 정책이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출산 장려에 2006~2015년 10년간 60조원을 지원하기로 하고, 그동안 보육·육아에 숱한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정작 지난해 분만 취약지 여건 개선사업 예산은 42억원에 불과해 고작 7곳만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안전한 출산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의료 인프라인 분만실과 산부인과 진료실 운영부터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절해야 한다.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은 도시와 농어촌 할 것 없이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다. 이를 위해 우선 교육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가 의논해 농어촌 지역 공중보건의사 장학제도 도입을 검토해 볼 만하다. 의대생 가운데 국가장학생을 선발해 산부인과와 함께 흉부외과·응급의학과 등 농어촌에서 특히 부족한 분야를 의무적으로 전공하게 하고, 수련을 마친 뒤 일정 기간 해당 지역 병원에서 의무 복무하게 하는 방법이다. 군이 장기복무 군의관을 확보할 때의 방식과 비슷하다. 필요하면 2~3% 정도의 정원 외 입학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도시 병원에서 근무하다 정년을 맞은 의사들을 농어촌에 초빙해 경험과 지식, 그리고 노하우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전원주택을 제공하고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경남도가 5년째 운영하고 있는 ‘찾아가는 산부인과’를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하는 것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특수이동 진료차량(버스)을 이용해 산부인과 없는 지역 임신부들에게 산전 진찰과 검사를 해주는 서비스인데 응급출산 지원도 가능하다. 정부는 과감한 정책으로 농어촌의 임신부는 물론 모든 주민의 의료 접근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