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무작정 귀농 … 기후·지역·유통 연구 끝에 연 8억 매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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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보고 달리면 성공 못해요.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야죠.”

4일 오후 2시. 아산시 배방읍 현대그린푸드 토마토 지정농장에서 만난 이종덕(52) 대표는 ‘귀농’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대표는 현재 2만3000㎡(7000평) 규모의 대지에서 화학 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유기농 토마토와 오이를 재배하고 있다. 그가 생산한 토마토는 수도권에 있는 현대백화점 전점(8곳)과 대형마트 6곳에 납품되고 있다. 이는 아산에서 토마토를 생산하는 농장 중 유일하다. 연간 매출액은 8억여 원에 달한다. 토마토 생산이 절정을 이루는 5~9월에는 소비자들을 위해 ‘토마토 농장 체험’을 진행하기도 한다.

“소비자들이 토마토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시식도 해 보면 ‘아 그래서 이 농장 토마토 맛이 일품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죠.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만큼 신뢰가 가는 것은 없으니까요.”

아산시 배방읍 현대그린푸드 토마토 지정농장 이종덕 대표가 자신이 생산한 유기농 토마토에 누워 기념촬영을 했다.

농산물 배송일 하다 유통경로 꽉 잡아

이 대표가 농사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지난 2000년. 천안에서 건축사업을 하던 이 대표는 IMF를 겪으면서 생활고에 시달렸고 1999년 부도로 인해 사업을 완전히 정리하게 됐다. 그 뒤 고향인 아산 배방읍으로 내려와 아산영농조합법인에서 농작물을 서울로 배송하는 일을 맡아서 했다.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가장으로서 돈은 벌어야 하는데 마땅히 할 일은 없고, 농사나 지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고향에 온 거죠.”

농작물 배송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사에 대해 알게 됐다는 이 대표는 그 이듬해 빚을 내 3300㎡(1000평)의 대지를 구입하고 친환경 농사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배송일을 그만둔 건 아니었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배송일을 계속했다.

"낮에 농사를 짓고 밤에 운전을 한다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한 푼이라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어도 참았죠. 한 6년간은 병행하면서 일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힘든 시기였지만 배송일 덕분에 농작물의 유통경로를 자세히 알게 됐고 인맥도 넓힐 수 있었다. 당시만해도 친환경 농사법이 대중화 되지 않아 남보다 빨리 친환경 농산물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한 계기도 됐다. 그 결과 현대백화점 과일코너를 책임지고 있는 ‘현대그린푸드’라는 곳과 독점계약을 맺게 됐고 토마토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실패할 때마다 좌절보단 해결방안 생각

그가 농사일에 뛰어들면서 계속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다. 친환경 농사이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했다. 잠깐이라도 소홀하면 벌레가 먹어 농사일을 망치기 일쑤였다. 2007년도와 2009년도에는 태풍과 눈 피해로 하우스가 무너져 2억 원 이상의 금전적 손해도 봤다. “기후로 인한 피해는 어쩔 수 없어요. 친환경을 선택한 만큼 세심한 관리도 저의 몫이죠. 그러나 피해를 입었다고 좌절한 적은 없었습니다. 어차피 전 모든 걸 다 잃어버리고 농사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려움도 스스로 해결하는 게 방법이라고 생각했죠.”

비온 후 땅이 굳어지듯 그는 실패를 할 때마다 좌절보다는 해결방안을 생각했다. 하우스의 비닐을 두텁게 하고 최대한 온도를 높여 폭설에 대비했고 하루 중 4시간만 자며 부인과 수시로 하우스를 둘러봤다.

“행여나 강한 태풍이 오면 피해를 막을 순 없어요. 하지만 피해를 최소화 할 수는 있죠. 저에게 실패는 가장 값진 교훈입니다.”

달콤한 말만 듣고 귀농하면 100% 실패

“산들내음 토마토는 진짜 최고죠. 맛도 맛이지만 직접 농장 체험을 하고 설명까지 들으니 무한 신뢰가 갑니다. 이 농장 토마토 외에는 먹을 생각도 안해봤어요.”

서울 압구정 현대백화점에서 이 대표의 토마토를 3년간 사먹고 있다는 노모씨(51·여)씨는 이 대표의 토마토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였다.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노씨는 “큰 아들이 아토피가 있어서 음식에 민감하다. 농약을 뿌린 농산물을 먹으면 금새 피부가 빨갛게 일어나고 심할 땐 가려움증을 유발한다”며 “이곳 농장의 토마토를 먹고는 한번도 몸에 이상을 느낀 적이 없어 자주 애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토마토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매주 2회 정도 서울에 간다. 고객에게 직접 자신을 소개하고 시장조사를 한다. 지난해에는 포장 박스의 규격을 바꿔달라고 납품업체에 건의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맛이 좋고 신뢰가 가도 보기 좋아야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거든요. 원래 사용하던 규격보다 좀 작게 만들어서 토마토가 꽉 차 보이게 하는 시각적 효과를 줬어요. 물론 양은 똑같죠. 예전에는 박스에 여백이 있었거든요.”

이 대표는 최근 불고 있는 귀농 열풍과 친환경 대해서도 뼈 있는 말을 남겼다.

“귀농은 냉정히 얘기해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달콤한 말만 듣고 귀농해서는 100% 실패합니다. 날씨, 기후 등도 세심히 연구해야 하고 지역적 특성도 알아야 해요. 그리고 유통망 확보나 경로도 알아야 합니다. 요즘 친환경 농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친환경 농산물은 아직까지 유통망 확보가 어려워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요. 정부나 지자체에서 ‘친환경 경매시장’을 열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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