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이 귀띔하는 과학영재학교 학업능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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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직(왼쪽)·이상준씨는 영재학교를 준비 중인 후배들에게 “질문을 즐겨하고 스스로 답을 구하려는 적극적인 태도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과학영재학교 학생은 필수·선택 과목 170학점 이상을 수강하고 졸업논문을 제출해야 졸업할 수 있다. 정해진 교육과정을 따라가야 하는 일반 고교와 달리 대학처럼 학생 스스로가 수업 수강계획을 짜야 한다. 자율성·책임감·적극성 뿐만 아니라 연구능력과 자기주도학습능력이 요구된다. 과학영재학교인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진학한 이상준(기계항공공학부 1)·이현직(물리천문학부 1)씨를 만나 과학영재학교의 교육과정의 특징과 학업 성취에 필요한 학습능력에 대해 물었다.

스스로 일관된 학업 방향 짜기가 성취 열쇠

 “선생님이 원하는 답, 정답을 말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중압감에서 벗어나야 해요. 틀린 답을 말했을 때 지적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질문을 즐겨 할 줄 알고, 내 실수를 인정하고 조언·충고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자세가 중요해요.”

 이상준씨는 과학영재학교 적응에 필요한 학업능력을 묻자 “지식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 스펀지 같은 탄력·유연함”을 첫 번째 능력으로 꼽았다. 이현직씨는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탐구 자세”를 꼽았다. 이처럼 적극성·책임감·자율성·유연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율과 창의교육을 중점에 둔 과학영재학교의 교육과정 때문이다.

 과학영재학교 학생들은 수학·물리·화학과 같은 고교기본교육과정에 해당되는 일부 교과목들을 제외하면 모든 과목을 학생 스스로 선택해 수강해야 한다. 2학년부턴 하루 수업계획과 자투리 시간 활용, 심화과목 선택, 자율학습 계획까지 모든 학교생활을 스스로 조율하고 계획해야 한다. 이런 환경은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답을 찾는 탐구자세’를 요구한다. 3년 동안의 일관된 학업방향을 어떻게 짜느냐가 과학영재학교에서 학업성취를 이루는 열쇠라는 얘기다.

 이현직씨는 “입학 때부터 대학입시를 의식해 특정방향으로 내 활동을 맞추기보다는 다양한 심화과목을 수강하면서 예전에 막연하게 느꼈던 관심분야를 구체화시켜가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학과정까지 넘나드는 심화과목, 실험?실습 수업, R&E(Research&Education, 대학·연구소와 같은 외부기관과 연계해 진행하는 연구프로젝트), 과제연구, 졸업논문 등 다양한 연구활동을 경험하면서 진로 설정에 대한 근거를 찾으란 뜻이다. 그는 “과학영재학교 입학 뒤 진로를 바꾸는 학생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관심분야를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이를 자기소개서에서 강조하면 대학입시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소통·발표·토론서 협동심 발휘 능력 길러야

 이상준·이현직씨 모두 “과학영재학교에선 2~4명이 팀을 이뤄 진행하는 연구?발표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 “친구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의 장점을 배우는 자세를 갖춰야 실험·연구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업에선 ‘이 세상에 +. - 전하 외에 또 다른 전하가 있다면 어떨까’와 같은 창의적인 과제물이 많다. 이런 과제를 해결하려면 팀원끼리 의견을 교류하고, ‘이런 방법은 어떨까’라는 식으로 각자 생각한 방법을 서로 공유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상준씨는 “과학영재학교는 절대평가 방식으로 내신 성적을 산출한다”고 말했다. “팀발표에서 좋은 평가를 받도록 친구들과 협동심을 살리는 학업태도가 좋은 성적을 받는 지름길”이라고 충고했다.

 자료를 종합·해석·분석하는 능력은 기본이다. 이현직씨는 “과제가 몰릴 때는 5~6개를 밤을 세며 한꺼번에 해야 할 때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평소 자료를 해석하고 PPT로 발표자료를 만드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능력을 기르려면 ‘뭐든지 의심해보는 습관’이 중요하다. 현상의 원인을 의심해보고, 정보가 정확한지 다시 살펴보고, 자료를 종합해 원인과 결론을 잇는 가설설정 훈련을 꾸준히 한다. 이상준씨는 “자료를 내 언어로 재해석해 발표해보면 수학·과학 이론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습관이 몸에 배면 전공 심화 교과도 쉽게 공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만큼 학업스트레스가 심하지는 않을까. 이들은 이에 대해 “생각의 전환”을 당부했다. “친구들을 경쟁상대가 아닌 그들에게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스승처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발표를 잘 하는 친구, 실험설계능력이 뛰어난 동기,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잘 내는 팀원에게서 보고 배울 점을 먼저 찾아보라는 충고다. 이현직씨는 “전원이 기숙생활을 하기 때문에 동기들 간의 인간관계도 중요하다”며 “스포츠·음악과 같은 취미생활을 동기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사진="최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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