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규제 '국경 분쟁' 전세계 확산

중앙일보

입력

프랑스 파리법원이 미국의 인터넷 포털업체인 야후의 나치 기념품 경매 사이트에 프랑스인들이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라고 명령함에 따라 '인터넷 국경' 논쟁이 전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파리 법원은 20일 국내법인 '반(反)인종차별주의자 법' 에 근거해 "야후는 향후 3개월내 프랑스 국적을 가진 네티즌들이 나치 경매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하루에 10만프랑(약 1만3천달러)씩 벌금을 부과하겠다" 고 판결했다.

파리 법원은 이로써 특정 국가의 법원이 통상적인 사법 관할권을 벗어나 국경없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컨텐츠를 규제할 수도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야후측은 "프랑스 법률로 미국 회사가 미국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를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미 수정헌법의 이념에 반하는 판결" 이라고 반발했다.

야후는 또 "기술적으로도 프랑스인들만 골라내 접속을 차단하기란 불가능하다" 고 말했다.

인터넷 업계는 이번 판결로 세계 2백여 국가들이 저마다 국내법을 내세워 인터넷 컨텐츠를 규제하려고 달려들 경우 e-비즈니스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예컨대 금연주의자들이 흡연에 가장 엄격한 국가의 법률을 빌려 담배회사 사이트를 폐쇄하도록 주장할 수도 있고, 환경주의자들이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생산하는 회사들의 사이트에 반기를 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이트 접속 금지 소송을 제기한 프랑스의 반인종차별주의국제연대(LICRA)는 "이번 판결을 사이버 검열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며 "사이버 공간에서도 국지적인 사법권과 문화.관습이 존중돼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기술적 문제와 관련, 파리 법원이 위촉한 3명의 인터넷 전문가들은 "국적을 표시하는 암호 체계를 도입해 이를 네티즌들에게 입력하도록 요구할 경우 특정 국가 국민들의 사이트 접속을 90% 이상 차단할 수 있다" 고 주장했다.

한편 유럽연합(EU)은 이달 중 유럽 소비자들이 인접 국가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자국법에 따라 고소할 수 있는 규정을 채택할 예정이어서 인터넷 컨텐츠 규제를 둘러싼 국경 논란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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