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불법사찰 논란에 실종된 총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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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정치판은 온통 불법사찰 문제로 떠들썩하다. 불법사찰의 실체규명을 위한 진지한 접근이라기보다 총선용 정치공세로 변질하고 있다. 이러다 지역대표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가 정책이나 비전보다 불법사찰에 대한 선입관과 이미지에 좌우될까 우려된다.

 불법사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 됐다. 다량의 문건이 폭로되면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매우 광범위한 사찰을 벌였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그런데 KBS 새노조와 민주당이 문건 2619건이 모두 현 정권의 사찰 기록인 듯 과장하면서 초점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그 가운데 80%가 노무현 정부 시절 자료’라고 반박했다. 이어 노 정부 시절 자료가 불법사찰인지, 정상적인 감찰인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양쪽은 관련 자료를 전면 공개하지 않은 채 자신들에게 유리한 일부만 가지고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

 사안마다 정황이 다를 것이기에 어떤 주장이 정확한지는 하나씩 따져봐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우선돼야 할 조치는 사건에 대한 정확한 조사다. 그런데 정치권은 조사 주체와 방법을 두고서도 갑론을박(甲論乙駁)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특별검사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야당인 민주당은 특검에 반대한다. 검찰을 믿지 못한다면서 검찰에 특별수사본부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3일엔 다시 “청문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찰의 피해자로 알려진 박근혜 위원장을 ‘공동책임자’라며 몰아세우고 있다. 진실규명보다는 정치공세에 가깝다.

 이제 정치권은 불법사찰에 대한 진상규명 절차에 서둘러 합의하고 총선이라는 선거 본연에 맞는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먼저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현재의 검찰수사를 진행하면서 객관적인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순서가 합리적이다. 특검을 한다고 해서 현재의 검찰수사를 중단할 필요는 없다. 검찰이 스스로 ‘사즉생(死卽生·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란 각오로 수사하고 있다 하니, 수사를 충분히 하도록 도와준 다음 그 결과를 특검에서 넘겨받으면 효과적일 것이다. 이어 특검이 충분한 수사를 한 결과를 보고, 총선 이후 구성될 새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국정조사든 청문회든 열면 된다.

 지금부터라도 정치권은 총선에 임하는 자신들의 정책과 비전을 국민에게 알리는 데 힘써야 한다. 복지와 재벌정책 등 민감한 이슈가 많은 선거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무엇을 혁신했는지, 비대위의 복지정책은 현 정권이나 야당의 복지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야 한다. 민주당 역시 자신들의 정책이 새누리당이나 통합진보당과 어떻게 다른지, 야권연대로 급진세력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한다.

 결국은 유권자들 하기에 달렸다. 국가는 물론 지역 발전을 위해 어떤 후보가 적합한지 들여다봐야 한다. 특히 정당들이 정파 간 이해관계에 따라 적당히 끼워넣은 무자격 후보를 철저히 골라내야 한다. 동네 곳곳에 붙어 있는 벽보부터 다시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