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프렌들리’라더니 … 작년 외국에 투자한돈 사상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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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매도당하는 상황에서는 기업을 못하겠다. 차라리 태국에나 가서 사업을 해야겠다.”

 1987년 여름 당시 구자경 전경련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6·29 선언을 계기로 전두환 정부 시절 짓눌렸던 노동운동이 활발해졌고 노사분규가 들불처럼 타올랐다. 당시 구 회장 발언은 언론의 비판을 받았지만 실제로 그 이후 해외직접투자는 크게 늘어났다. 87년 3억6736만 달러(신고 기준)였던 한국의 해외직접투자는 이듬해 16억3630만 달러로, 90년 23억8013만 달러로 늘었다.

지난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직접투자(IFDI)는 137억 달러. 반면에 한국에서 외국으로 빠져나간 해외직접투자(OFDI)는 445억 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들어오는 투자보다 나가는 투자가 월등하게 많은 현상은 2007년 이후 뚜렷해졌다.

 기획재정부는 1일 발표한 ‘우리나라 국외직접투자 순유출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2000년 이후 OFDI는 연평균 24% 증가했으나 국내에 들어오는 IFDI는 연평균 3%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외로 나가는 투자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투자를 뺀 FDI 순유출은 이명박(MB) 정부 들어 100억 달러대를 넘어서는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친기업을 표방했던 MB 정부에서 FDI 순유출이 왜 가장 많이 늘었을까.

 재정부는 2007년 이후 에너지자원 확보가 중요해지면서 한국의 해외 광업투자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서비스업과 제조업의 해외투자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이는 주로 글로벌 기업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국내 생산기지의 국외 이전보다는 신시장 개척, 판매망·기술 확보, 자원개발 등을 위한 투자활동이 많다고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해외투자 활성화 정책도 한몫했다. 한양대 하준경(경제학) 교수는 “2007년 당시 원화가치가 900원대까지 오르자 정부가 해외투자에 대한 규제를 풀었다”고 말했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 투자하기 좋은 환경 측면에서 고민할 부분은 있다. 지난해 부쩍 강화된 정부의 ‘공생발전’과 ‘동반성장’ 정책과 선거를 앞두고 강도가 세지고 있는 정치권의 ‘기업 배싱(때리기)’ 분위기가 FDI 순유출 추세를 너무 촉진할 가능성은 없을까.

 재정부는 한국의 비용·입지 경쟁력을 단기간에 높이기 어려워 IFDI가 OFDI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증가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IFDI 부진은 ▶세계경제 침체 ▶외국인투자 유인책 부족 ▶외국인 투자 규제 ▶노동시장·생활여건 등 경쟁력 부족 탓으로 판단했다. 나가는 OFDI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들어오는 IFDI가 장기간 정체되면 최종적으로는 산업기반을 잠식할 가능성이 있다. 재정부 한경호 국제경제과장은 “IFDI의 장애요인이 되는 고비용 구조, 노사관계, 주거 여건, 규제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FDI 순유출

해외직접투자(OFDI·Outward Foreign Direct Investment)에서 외국인직접투자(IFDI·Inward Foreign Direct Investment)를 뺀 것. FDI 순유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통상적으로 경제발전 초창기에는 해외 자본의 유입이 유출보다 많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순유출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해외 생산기지, 판매망 확보 등을 위해 OFDI를 확대하는 반면에 인건비 상승 등으로 IFDI는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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