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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영·강부자·S라인…역량 갖췄느냐가 문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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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호 06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문제가 인사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부터 인사 잡음을 낳았다. 학연·지연 등을 배경에 둔 인사로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 땅부자)’ ‘S라인(서울시장 재직 시절 관료)’ 등의 유행어가 생겼다. 노무현 정부 때도 ‘코드 인사’라는 말이 유행했다. 통치권자가 측근 인사를 등용하는 데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제한된 임기 안에 효과적인 국정운영을 하기 위해선 대통령의 철학을 잘 이해하는 인사들을 기용해야 한다”는 것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이해관계에 상관없이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효율성이냐 공정성이냐의 딜레마다.

미 행정학회보 편집장 제임스 페리 교수

공공분야 인사에서 상반된 이 두 항목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한국사회과학협의회(회장 정용덕) 소속 학자들이 인사경영·공공행정 분야 석학인 제임스 페리(64·사진) 미 인디애나대 석좌교수를 지난달 29일 만나 해법을 들어봤다. 페리 교수는 행정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행정학회보(Public Administration Review) 편집장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우수 석학 초청 프로그램인 월드 클래스 유니버시티(WCU)에 초청받아 연세대에서 강의도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후원한 이날 좌담회 사회는 함성득(한국사회과학협의회 편집장) 고려대 교수가 맡았고, 박흥식(중앙대, 한국행정학회 편집장)·이병철(동국대, 한국경영학회 편집장)·한준(연세대, 한국사회학회 편집장) 교수가 참석했다. 다음은 학자들과 페리 교수의 질의 응답 내용.

-이명박 정부에선 대통령과 같은 교회를 다니거나 고향·출신 학교가 같은 사람들이 공직에 상당수 기용돼 비판을 받았다. 미국도 인사 논란이 있나.
“미국도 학연·지연 등이 공공분야 인사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가령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이 졸업한 예일대 출신이나 정치적 기반이었던 아칸소주(州) 출신을 많이 기용했다. 클린턴 행정부 1기 때 노동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UC 버클리 교수)는 클린턴과 같은 옥스퍼드대 로즈 장학생 출신이다. 이념적 성향을 제외하면 출신 학교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인사의 효율성과 공정성은 서로 충돌이 불가피할 텐데.
“대통령이 보여줘야 하는 정치적인 반응성과 임명되는 사람들의 역량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라고 본다. 대통령은 지지자들이 기대하는 어젠다를 실천하는 ‘반응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기용한다. 그런데 역량이 부족한 사람을 쓸 때 공공성과 충돌이 생긴다. 레이건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인 뉴햄프셔 출신 인사를 연방 조달청장으로 임명했다가 그가 지역적 편향성을 보이는 바람에 해임한 사례도 있다.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모든 공직은 승리자의 전리품’이라고 생각했다. 엽관제(spoils system)의 시초다. 그런데 제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가 선거 후 자리 분배에 불만을 품은 지지자의 총에 맞아 숨지면서 변화가 왔다. 1883년 펜들턴 상원의원이 ‘펜들턴법’이라 불리는 미 연방공무원법을 발의하면서 미국 인사 시스템이 실적제(merit syst
em)로 바뀌게 됐다.”

-측근 기용과 능력있는 인재 발굴을 조화시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전문성에만 치중하면 관료제가 심해져 국민의 이익보다는 조직 이기주의, 복지부동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충성도를 따져 정치적 지명을 하는 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청와대나 백악관이나 결국 관건은 대통령이 어느 선까지 임명하느냐다. 미국은 1978년에 공무원제도개혁법을 제정, 이른바 ‘고위공무원단(Senior Executive Services)’을 구성해 고위 공무원의 10%만 정치적 임명이 가능하도록 했다. 국세청, 연방 사회보장국처럼 고도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기관인 경우 대통령은 정치적 임명을 최소화한다. 청장이나 국장만 임명한다. 반면 농림부처럼 주 정부들과 접촉할 일이 잦은 기관은 정치적 임명 비율이 높다.”

-정실인사가 꼭 나쁘지는 않다는 얘기인가.
“역량만 된다면 관계없다는 거다.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 때 연방 재난관리국(FEMA) 마이클 브라운 국장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초기대응 실패로 사임했다. 반면 클린턴 대통령 시절 FEMA 국장이었던 제임스 리 위트는 재난관리 분야 전문가로 불린다. 둘 다 정실인사였지만 한 명은 무능했고 한 명은 유능했다. 중요한 건 역량 있는 인사를 기용하는 임명권자의 정치적 분별력이다.”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번번이 인사 잡음이 심하다. 이유가 뭘까.
“미국은 인구가 3억800여만 명이어서 인재 선택의 폭이 넓다. 내가 연세대에서 3학기 동안 강의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은 흑백논리가 지나치게 강하다는 거다. 진보냐 보수냐, 우리 편이냐 아니냐 편가르기가 심하다. 사람 쓰는 폭이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장관 중 한두 명은 상대 당 사람을 쓴다. 지금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교통장관(레이 러후드)이 공화당이며, 전 국방장관 마이클 게이츠도 공화당이다.”

-5년 단임제가 정실인사의 핑계가 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단임제 대통령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능력이 다소 부족해도 내가 잘 알고 충성심 강한 사람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한다. 미국 대통령들은 1기에서 실패하면 재선이 어렵기 때문에 기용하는 사람의 자질에 신경을 쓴다. 시기와 자리의 종류, 특성 등을 고려해 충성심과 능력의 비율을 조정하며 사람을 써야 한다. 정치적 분별력이 낮은 사람은 자신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사람을 써야 성공한다고 믿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기업 대표를 재계에서 발탁했다. 전과는 다른 접근법이었다.
“장관직은 충성도나 정권 창출 기여도에 좀 더 기우는 것이고, 공기업 CEO는 역량을 더 봐야 할 거다. 미국엔 800여 개의 공기업이 있는데, 비즈니스 경험이 있는 사람을 뽑는 게 아무래도 합리적이다. 레이건 대통령도 기업인을 많이 기용했다.”

-적격자를 구분하는 기준 마련이 중요할 것 같은데.
“관련 학회나 기업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평가하는 식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가령 종신직인 연방 판사의 경우 미국변호사협회(ABA)에서 점수를 매겨 사전 검증을 한다. 연방 판사를 비롯한 다수의 연방 고위 공무원은 상원이 동의하지 않으면 임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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