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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섯 살, 한층 선명해진 ‘중동본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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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호 12면

1 메디나 주메이라 호텔 전시장에 마련된 아트 페어장.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현대미술 아트 페어인 아트 두바이가 개최됐다. 올해 6회를 맞은 아트 두바이에는 32개국 75개 갤러리가 참여했고, 500여 작가의 작품이 출품됐다. 총 2만2500여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2012 아트 두바이'를 보고

메디나 주메이라 호텔 전시장에서 개최된 아트 두바이의 프라이빗 전시 오프닝에 앞서 두바이의 현 후계자인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왕자가 아트 두바이 디렉터인 안토니아 카버와 보디가드, 두바이 기자단을 대거 동원하고 전시장을 둘러보는 동안 페어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2007년 출범한 아트 페어는 당시 다국적 금융 기업과 세계적인 투자 자본을 유치하고,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 등을 시작하면서 주목받던 두바이의 위상과 함께 미술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2008년 말에 닥친 경제 위기 이후 투자 자본 등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두바이는 위기를 맞았고, 아트 두바이 또한 영향을 받는 듯했다.

2 갤러리 부스 풍경. 3 한국 크로프트 스페이스 부스에 전시된 이재효 작가의 작품들. 4 제 4회 아브라즈 캐피탈 아트 프라이즈 수상작들을 참관하는 관람객들

하지만 올해 아트 두바이는 전년도보다 잘 짜인 프로그램으로 질적으로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페로탕과 샹탈 크루젤, 미국의 마리안 보에스키와 페이스 갤러리, 이탈리아의 콘티누아 갤러리 등 서양의 메이저 갤러리와 아랍에미레이트 갤러리, 레바논과 사우디아라비아, 튀니지, 모로코, 인도, 인도네시아 등 소위 메나사(MENASA·Middle East, North Africa, South Asia의 약자로 중동, 북아프리카, 남아시아의 국가들을 지칭한다) 지역 갤러리들이 대거 참여했다. 한국 갤러리로는 유일하게 아트 사이드 갤러리가 나왔다.

중동의 정치·사회적 고민을 담다
부스를 돌아보면서 받은 전체적인 느낌은 중동의 아이덴티티가 살아 있다는 점이다. 아트 두바이는 아트 바젤을 닮지 않아서 좋았다. 그 흔한 데이미언 허스트나 제프 쿤스의 작품도 보이지 않았다. 이란이나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와 두바이 출신 작가들의 작품은 현 중동 사회가 안고 있는 정치적·사회적 고민을 드러냈다.

5 퍼포먼스의 한 장면.

중동 지역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작가로는 아랍적 소재를 근대 서양화 기법으로 표현하는 사프완 다훌(Safwan Dahoul·1961년 시리아 태생), 아랍 사회의 정치사회적 이슈를 회화와 설치 등의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표현하는 미국 유학파 작가인 파라드 모시리(Farhad Moshiri, 1963년 이란 태생), 아랍의 문화와 정신에 개인의 정체성을 사진과 영상 작업으로 표현하면서 세계적인 미술관이나 비엔날레의 초청을 받는 시린 네샷(Shirin Neshat, 1957년 이란 태생) 등을 꼽을 수 있다.

바이어뿐 아니라 게스트도 국제적이었다. 각국에서 75개 뮤지엄 그룹이 방문했다. 세계적인 큐레이터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파이낸셜 타임스 에디터인 조지나 애덤, 중국 컬렉터인 리처드 장, 작가 장후완, LA 현대 미술관 CEO인 마이클 고반 등이 글로벌 아트 포럼의 패널로 참가했다. “걸프만은 이제 매년 3월이면 꼭 방문해야 하는 곳이 되었다”는 페어 디렉터 안토니아 카버의 말대로 아트 두바이의 각종 프로그램은 신선했고 진지했다.

다만 아트 두바이의 순항을 뒷받침해 줄 상업적인 성공이 계속 따라줄 것인지가 관건이다. 페어 프라이빗 오픈 30분 만에 부스 작품을 모두 팔아치운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 아트르 갤러리(Jeddah’s Athr Gallery)와 같은 갤러리도 있었지만 많은 갤러리가 전년도보다 다소 침체된 판매 무드 속에서 컬렉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활발한 미술관 프로그램이나 공공미술 기관의 저변 확대를 통한 지속적인 미술계의 인프라 구축 없이 아트 페어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사막에 갑자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세우고자 하는 야심과 같을 수도 있다. 다행히 후자는 성공했지만 문화계에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속도는 빌딩을 세우는 속도와 비교할 수 없다.

두바이 미술계가 함께 참여하는 아트 위크(Art Week) 프로그램 중 중동에서 처음 열리는 디자인 데이스 두바이(Design Days Dubai) 페어가 주목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버즈 칼리파를 눈앞에 둔 페어장에서 열린 올해 디자인 두바이에는 22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한국의 크로프트 스페이스는 이정섭과 이재효 작가의 작품을 선보였는데, 특히 이재효 작가의 작품은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왕자가 소장하고, 버즈 칼리파 빌딩 외부 설치작품도 주문받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작가들이 참가하고 리드하는 시카 아트 페어(Sikka Art Fair)는 오랫동안 미술계의 변방으로 여겨왔던 작가들의 밀집 지역인 바스타키아(Bastakiya)에서 열리면서 지역 작가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됐다. 바스타키아와 함께 두바이의 미술계를 엿볼 수 있는 곳은 알세칼 거리(Alserkal Avenue)로 갤러리 밀집 지역이다. 먼지가 휘날리던 산업 창고 지역인 알쿠오즈(Al Quoz) 지역은 몇 년 전부터 진지한 기획전을 선보이는 갤러리들이 들어서면서 두바이의 문화 요지로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 두바이를 대표하는 ‘The Third Line Gallery’를 비롯해 20여 개의 상업 갤러리, 지난해 오픈한 개인 재단인 살살리 뮤지엄(Salsali Private Museum), 비영리 전시 공간인 사틀리트(Satellite) 등이 이곳에 위치하면서 현대미술 애호가들이 꼭 들러야 하는 곳이 됐다.

창고 지대가 문화 요지로 바뀌다
아랍에미리트가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는 문화 정책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다 할 현대 미술관이 없었던 두바이에서는 버즈 칼리파 건물 옆에 현대 미술관과 오페라하우스 구역을 건립한다는 뉴스를 아트 두바이 기간 중 발표했다.
또 경제 위기로 두바이가 휘청거리는 사이 아부다비에서는 2015년 오픈 목적으로 아부다비 루브르와 2017년 완공 목표인 아부다비 구겐하임의 건립을 이미 2010년 내놓았다.

아랍 연합국의 사르자에서는 2006년부터 사르자 비엔날레가 개최돼 오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카타르 수도 도하에는 이슬람 뮤지엄(Museum of Islamic Art)과 마타프(Mathaf·Arab Museum of Arab Art)에서 무라카미 다카시, 루이스 부르주아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전시를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기업이나 개인의 인식은 아직 미비한 듯하다. 아트 두바이의 파트너이자 투자전문회사 아브라즈 캐피털의 니콜라스 네슨은 “경제 발전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미래에 큰 결실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화적인 투자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면서 “중동 지역에서는 기업이나 개인 차원의 문화 지원 활동이 아직 미비한데 아브라즈 캐피털의 문화 지원 사례가 타 기업들의 모범사례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사진 아트 두바이 조직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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