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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디자인, 아우디 닮았다고 하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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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이 자신이 디자인한 K5 자동차 옆에 섰다. 그는 “모든 차에는 얼굴이 있다. 거기에 표정을 그리는 일이 자동차 디자인이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큰 위기였다. 기아차는 2006년(-1253억원)과 2007년(-554억원) 2년 연속 영업적자를 냈다. 상황은 2008년에 역전됐다. 로체 이노베이션과 포르테 등을 출시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해 영업이익은 3085억원이었다. 2009년(1조1445억원), 2010년(2조4900억원), 2011년(3조5251억원). 해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열쇠는 ‘디자인 혁명’이었다.

 그 열쇠의 주인공을 만났다. 기아차의 피터 슈라이어(59·기아차 글로벌 디자인 총괄) 부사장. 그는 폴크스바겐 디자인 총괄을 맡다가 2006년 9월 기아차로 왔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당시 기아차 사장)은 유럽으로 날아가 삼고초려 끝에 그를 스카우트했다. ‘파격적인 대우’를 했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디자인 기아’라는 깃발은 이제 기아의 간판이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지난해 말 미국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바일에서 뽑은 ‘올해의 인물’, 영국 BBC톱기어의 ‘올해의 인물’ 등에도 선정됐다. ‘기아의 디자인’이 이유였다. 기아차의 디자인 진화, 그 심장을 그리고 있는 슈라이어 부사장을 단독 인터뷰했다.

 온통 검정이었다. 서울 양재동의 기아차 본사에서 만난 그는 넥타이도, 셔츠도, 슈트도, 구두도, 심지어 뿔테 안경까지 까맸다.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에 꼽히는 슈라이어 부사장은 ‘맨 인 블랙’이었다. 지금껏 언론에 노출된 사진에서도 거의 블랙이다. 이유를 먼저 물었다. “왜 블랙인가?” 슈라이어 부사장은 “내가 자동차보다 더 눈에 띄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옆에서 알록달록한 넥타이를 매고 있으면 차로 향하는 시선을 빼앗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나의 패션’으로 말하지 않았다. 대신 ‘차의 패션’으로 말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이 표현하는 기아차 K5의 얼굴.

●2006년 폴크스바겐에서 기아차로 왔다. 처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 소감은.

 “영광이었다. 당시 나는 기아차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특히 소렌토의 디자인이 좋았다. 어떤 사람들이 그 뒤에 있을까. 나는 그들이 보고 싶었다. 물론 기아차로 오는 건 내게 큰 모험이기도 했다.”

●왜 모험이었나.

 “당시 한국 차는 유럽 차에 비해 디자인 경쟁력이 꽤 떨어졌다. 한국 차의 디자인은 너무 중립적(뉴트럴)이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뉴트럴(neutral)’이라는 점잖은 표현을 썼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디자인이 너무 밋밋하다’는 뜻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는 매우 짧다. 기아차와 현대차에는 빠른 성취가 있다. 그런데 그걸로는 부족했다. 한국 차에는 훨씬 더 강한 디자인의 아이덴티티(정체성)가 필요했다.”

●더 강한 정체성, 그게 뭔가.

 “자동차를 보라. 차에도 얼굴이 있다. 그 얼굴마다 표정이 있다. 캐릭터가 없는 자동차는 ‘표정 없는 얼굴’과 마찬가지다. 내가 기아차에 왔을 때 결핍돼 있던 게 자동차의 얼굴 표정이었다.”

●정의선 부회장의 스카우트 제의를 수용한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 기아차는 흰 캔버스였다. 매우 젊고 프레시한 회사였다. 내게는 기회였다. 이 브랜드의 얼굴에 표정을 그리고 싶었다. 자동차 디자인뿐만 아니라 브랜드에도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고 싶었다.”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맞다. 특히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서로 다른 언어는 큰 장벽이다. 그래서 큰 도전이었다.”

●왜 언어가 장벽인가.

 “자동차 디자이너들에겐 언어가 아주 중요하다. 미세한 뉘앙스를 통해서 정확한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건 또 단순히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비슷한 교육, 문화적 배경, 사고방식을 공유한다. 기아차에선 서로 다른 국가, 서로 다른 언어,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모험이었나.

 “큰 모험이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였으니까. 내게 ‘자동차 디자인 세계’라는 건 독일을 비롯한 유럽이었다. 나는 유럽이 자동차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 이 시간에도 잠들지 않고 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5월 출시 예정인 K9의 얼굴에도 ‘호랑이 코 그릴’이 얹혀 있다.

●결과적으로 어땠나. 기아차의 경험이 당신의 디자인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나의 디자인 세계를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확실히 그렇다.”

 업계에선 슈라이어 부사장이 기아차로 오면서 ‘특별한 조건’을 내걸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실제 언론 보도도 있었다. “자동차의 최종 디자인이 완성될 때까지 회사에서 아무런 간섭도 하지 말라”는 요구였다고 한다.

●실제 그런 요구를 했나.

 “아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 그건 자동차 디자인을 비밀스럽게 감추고 있다가, 마지막에 최고경영자(CEO)의 눈앞에 들이미는 식이다. ‘당신은 이걸 원하나, 원하지 않나?’라며 말이다. 그건 아니다. 자동차 디자인은 아주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져야 한다. 경영진이 디자인 프로세스에 참여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그래야 차가 출시됐을 때도 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 또 ‘이런 차가 나오면 임팩트가 있겠다’며 중간중간 공감하는 차원의 커뮤니케이션도 필수적이다.”

●디자이너의 소신도 중요하지 않나.

인터뷰 도중에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은 연필을 꺼내서 자동차를 그렸다. 그는 “디자인은 깎고 다듬을수록 ‘확신’에 가까워진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물론이다. 디자인에 정치가 끼어들면 안 된다. 자동차 디자인이 사내 정치에 휘둘려선 곤란하다. 디자이너는 어느 정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따라야 하는 게 맞다. 그게 자동차 회사에서 디자이너를 필요로 하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인터뷰 때 테이블 맞은편에서 사진기자가 촬영을 하고 있었다. 플래시가 ‘펑!펑!’ 터졌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사진기자와 눈을 맞추더니 “‘모델이 멋지지 않나요!(Such a nice model!)’라며 조크도 던졌다. 사진기자가 주문했다. “방금 자동차마다 표정이 있다고 말했다. K5의 디자인을 얼굴로 표현해 달라!” 슈라이어 부사장은 “하하하!” 웃더니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진지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눈 옆에다 양쪽 손가락을 집게처럼 모았다. 손가락은 헤드 램프, 얼굴은 기아차의 ‘호랑이 코 그릴’처럼 보였다. 슈라이어 부사장이 얼굴 표정과 손짓으로 즉석에서 그려낸 K5의 디자인이었다.

 슈라이어 부사장이 기아에 온 이래 K7, K5, 포르테, 소렌토R, 스포티지R, 프라이드, 레이 등 기아차의 얼굴마다 ‘호랑이 코 그릴’이 얹혔다. ‘타이거 노즈(호랑이 코) 그릴’은 이제 ‘기아차 디자인의 DNA(유전자)’가 됐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안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냈다. 샤프처럼 생겼는데 심이 굵은 연필이었다. 책상 위에 있던 A4용지를 뒤집었다. 뒷면에 ‘쓱싹쓱싹’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손놀림은 빨랐고, 스케치는 간결했다. 그린 뒤에 보니 ‘호랑이 코 그릴’이었다. 양 옆에 헤드 램프도 그리고, 그릴 위에 회사의 로고도 스케치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코앞에서 스케치를 하는 풍경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그림’이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항상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닌다. 시간이 날 때마다 스케치를 한다. 그렇게 스케치를 하며 클레이 모델(공업용 진흙을 이용해 만든 자동차 모형)로 작업을 하다가 라디에이터 그릴의 디자인이 떠올랐다. 그걸 기아차의 한국인 디자이너들에게 보여줬다.”

●보여주면서 뭐라고 말했나.

 “‘이게 내가 미래에 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디자이너들이 묻더라. ‘우리는 뭘 어떻게 하면 되는가?’ 먼저 그릴을 설명했다. ‘이것은 사람의 얼굴과 같다. 자동차의 정면은 사람의 얼굴이다. 그릴은 눈과 코와 입이고, 라이트는 눈이다. 가령 호랑이 코를 생각해 보라.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다. 얼마나 입체적인가. 자동차의 얼굴에서 이 그릴도 그런 거다.’ 디자이너들이 또 물었다. ‘그 그릴을 뭐라고 부르면 되나?’”

●뭐라고 대답했나.

 “즉석에서 ‘타이거 노즈 그릴’로 부르자고 했다.”

●방금 ‘계속 스케치를 하면서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했다. 그건 디자인 작업의 핵심적인 노하우로 들린다. 스케치를 계속 하는 게 왜 중요한가.

 “스케치를 하면 할수록 ‘확신’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오른손으로 연필을 잡았다. 그리고 왼손으로 머리를 가리키더니 목, 어깨, 팔, 연필을 쥔 오른손까지 쭉 따라서 내려갔다. “머리에서 어깨를 거쳐 손까지, 이건 ‘생각하는 기계(Thinking machine)’다. 그림을 그리고, 그리고, 그리는 일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는 일이다. 스케치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계속 다듬어야 한다. ‘이건 더 다이내믹하게 그려야지. 이건 더 강하게 그려야지.’ 그렇게 깎고 다듬는 과정이 바로 진화다. 깎고 다듬을수록 생각도 진화하고, 디자인도 진화하기 때문이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독일차 아우디(1994~2002)의 수석 디자이너, 폴크스바겐(2002~2006)의 디자인 총괄을 역임했다. 2006년에 기아차로 옮긴 슈라이어 부사장은 한국 자동차 산업에서 ‘디자인 진화’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진화의 과정은 ‘한 방에’가 아닌 ‘한 걸음씩’이었다. 로체 이노베이션은 포르테로, K5로, 다시 K7으로 진화했다. 그런 변화에 시장은 놀랐다.

 모든 조직에는 전통과 문화, 위계질서와 관습적 고집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린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그걸 어떻게 바꾸었을까. 그는 노하우를 한마디로 응축했다. “모든 사람과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것이다(Personal contact to everybody).”

 슈라이어 부사장은 평소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기아 유럽디자인센터에서 일한다. 한국은 1년에 20회 남짓 방문한다. 그는 인터뷰 전날 한국에 왔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기아차 디자인센터로 직행, 오전 8시 회의에 참석했다. 종일 디자이너들과 대화를 나누고 토론을 했다. 이튿날도 아침부터 빽빽한 일정을 소화한 뒤에 밤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떠나던 날 오후의 단독 인터뷰도 바쁜 스케줄 때문에 신청한 지 두 달 만에 어렵사리 성사됐다.

●퍼스널 콘택트(개인적 접촉), 어떤 식으로 하나.

 “위계질서는 중요하지 않다. 상대가 디렉터급이든, 매니저급이든, 신참 디자이너든 상관없다. 내겐 모든 디자이너와 개인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야 주고받는 메시지가 중간에서 왜곡되지 않는다. 영어나 독일어가 통하지 않을 때는 보디랭귀지(신체언어)라도 써야 한다. ‘이 디자인은 좀 더 긴장(tension)이 필요하다’ ‘이건 자동차의 등 쪽이 좀 요동친다’는 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어떤 때는 권투선수처럼 주먹을 쥔 채 공격적인 표정도 짓고, 어떤 때는 두 주먹으로 얼굴을 가린 채 방어적인 표정도 짓는다. 표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렇게 모든 디자이너와 직접적으로 연결이 돼야 한다.”

●당신의 리더십은 체계가 있는 것 같다. 요약하면.

 “우선 내가 먼저 보여줘야 한다. 그 다음에는 이해를 시켜야 한다. 그러고 나서 따라오게 해야 한다. 이 세 가지 과정은 중요하다. 보여주고, 이해시키고, 따라오게. 나도 한때는 어린 디자이너였다. 나도 그런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했다. 그래서 아무리 어린 디자이너라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면 귀담아 듣고 존중한다.”

 인터뷰 말미에 슬쩍 꼬집었다.

●기아차 디자인에서 아우디의 유전자가 느껴진다는 평도 있다. 어찌 생각하나.

 “수년 전을 돌이켜 보라. 기아차를 아우디에 비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우디를 닮았다는 건 오히려 기아차의 성취다. 그만큼 디자인적으로 진화했다는 이야기다. 내겐 칭찬으로 들린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서울 시내에서 차를 타고 가면서도 주위의 차를 유심히 본다. 옆에 앉은 동료 디자이너에게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눈을 찡긋하기도 한다. 입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을 때도 있다. “방금 봤어? 저 차, 이렇게 생겼지?”라며 말이다. 젊은 디자이너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배운다.

 기아차 디자인센터의 김경윤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기어 손잡이를 디자인할 때였다. 디자이너들은 손잡이의 모양과 색깔에 주로 신경을 쓴다. 그런데 슈라이어 부사장님이 기어 손잡이를 잡아보라고 했다. 잡았더니 그 위에 자신의 손을 덮었다. 그리고 꽉, 아주 꽈~악 눌렀다. 아플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물었다. ‘어때? 아파, 안 아파?’ 왜 그러나 의아했다. 그런데 ‘운전자가 기어 손잡이를 잡고서 몇 시간씩 운전해도 편해야 한다. 오토 기어는 굳이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있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자꾸 손을 올리고 싶어지는 감성이 손잡이에 담겨야 한다. 그게 디자인이다’고 말했다. 디자이너는 주로 눈에 보이는 걸 다룬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다루는 걸 보고서 깜짝 놀랐다.”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 슈라이어

500년 전 다빈치처럼 난 단순미를 추구한다

자동차는 남자의 로망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의 로망은 대체 뭘까.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은 어릴 적 이야기를 꺼냈다. “아홉 살 때였다. 신문에 ‘재규어 E-타입’ 광고가 났다. 차가 처음 출시됐을 때였다. 신문을 보던 아버지가 ‘우~와!’하고 감탄했다. 아주 우아하면서도 근육이 있는 차였다. 당시 가격은 2만 달러. 어린 나에겐 ‘100만 달러’라고 할 때의 어마어마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평생 돈을 모아도 살 수 없는 차, 그런 차였다. 이후 재규어 E-타입은 나의 드림카가 됐다.”

 1961년 생산된 재규어 E-타입은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서도 명차로 꼽힌다. 경주용차를 방불케 하는 낮은 차체에 에어로 다이내믹 스타일은 수려하기 짝이 없다. 74년까지 총 7만2500대가 생산됐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최근 이 차를 구입했다. “재규어 E-타입은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크리스 뱅글(전 BMW 디자인 총괄), 월터 드 실바(폴크스바겐 그룹 디자인총괄)와 함께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힌다. 그는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디자인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의 자동차 디자인을 ‘직선의 단순미’라고 평가한다. 그 말에 슈라이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 왜 직선인가.

 “좋은 질문이다”고 운을 뗀 뒤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설명을 시작했다. “자동차는 덩어리다. 사실 자동차에는 직선이 없다. 직선으로 반듯이 보이는 부분도 자세히 보면 모두 곡선이다.”

●그런데 왜 ‘직선’을 말하나.

 “나는 ‘직선적 생각(Straight line of thinking)’을 말하는 거다. 그건 직관적(Straight)이고, 단순(Simple)하고, 명쾌(Clear)한 걸 뜻한다. 단순한 것이야말로 가장 어렵다. 500년 전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렇게 말했다.”

●그런 단순함이 자칫 지루하지는 않나.

 “단순함이 지루함을 의미하진 않는다. K5의 디자인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자동차 디자인이 너무 복잡하면 금방 식상해진다. 외관뿐만 아니다. 실내 디자인에서도 단순과 명쾌는 아주 중요하다.”

●5월에 K9이 출시될 예정이다. 디자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한국에서 가장 스포티한 럭셔리 세단이다. 대체로 럭셔리 세단은 우아하고 무게감이 있다. 반면 K9은 타이트하고 스포티하다. 독일의 자동차를 보라. 벤츠는 더 우아하고, 아우디와 BMW는 더 젊고 에너지가 넘친다. 벤츠와 아우디가 다르듯이 K9도 다르다. 뒷자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 직접 핸들을 잡고 싶은 차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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