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을 위한 환경철학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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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체가 서로를 살리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죽이는 곳이 되어야 속이 시원한 것인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시골 아이가 싼 똥은 거름이 될 수 있지만, 도시 아이가 밭에 싼 똥은 방부제 때문에 썩지를 않아서 물기만 가시고 푸석푸석한 거푸집 상태로 남아 거름조차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이제부터 이야기할 책 15쪽에서)

과학, 환경 분야에서 직접 활동하는 상지대 철학과 교수, 최종덕 님이 우리의 자연 환경을 놓고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함께 하는 환경 철학’(최종덕 지음, 동연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가볍게 나온 이 책에서 지은이는 “서로의 삶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찌든 틀을 벗어나 더불어 숨을 쉬고 놀고 가는 생명의 장터”(이 책 5쪽에서)를 세우자고 목청을 높입니다.

환경을 살리자는 책을 내기 위해 나무를 죽여야 하는 모순을 조금이라도 면하기 위해 재생용지를 써서 펴낸 이 책에서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철학은 “다른 철학과 달리 이론이나 형이상학의 철학이 아니라 실천을 위한 철학”입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자세를 이야기하자는 거지요.

지은이의 환경 이야기는 농촌을 중심으로 시작합니다. 시골 예찬론을 내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농촌이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경제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데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지은이가 말하는 환경 철학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바로잡는 일이고 보니,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지은이는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삶의 의미를 자연이나 환경과 분리된 곳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져 있는 체험의 공동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사람과 자연 사이의 끈을 쓸데없이 꼬거나 끊어버리고, 개인들의 경쟁과 탐욕으로 모인 어설픈 집단에 대한 구체적인 반성과 비판이 있어야 할 것”(이 책 23쪽에서)이라고 지은이는 강조합니다.

이 책은 크게 ‘마음’ ‘사회’ ‘철학’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째 마당 ‘마음’에서 지은이는 자연과 환경을 이해하고, 생명을 함께 하는 녹색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실천과 행동이 없는 우리 사회의 환경교육을 꾸짖고, 자연과 환경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받아들여 교과서가 아닌 실제 경험을 통해 부딪쳐야 한다고 하지요. 자연이라는 전체의 생명성 안에서의 개인의 생명성을 온존히 지켜가야지, 개인만의 생명성을 찾아낼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어 둘째 마당인 ‘사회’에서 지은이는 소비지향의 경제구조, 반생명적인 보신주의, 청소년 문제, 인구정책, 수입식품과 귀화생물 등 우리 사회의 반생명적인 현상들에 날선 비판을 들이댑니다. 환경 문제를 바르게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전제는 환경 문제를 사회 전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겁니다.

끝으로 셋째 마당 ‘철학’이 이어지지요. 환경에 대한 이해가 처음 이야기를 시작한 농촌이나 자연 정도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은이는 되풀이해 이야기합니다. 이른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자연과 환경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정보사회를 이야기하면서도 최종덕 님은 정보사회의 미덕 가운데 하나인 ‘창조적 관심’도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바로 이해하는 ‘인간학’임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지은이는 환경철학의 기본 사상은 인간에 대한 사랑임을 강조하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일은 인간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따라서 환경철학의 기본 사상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편지 글이나 대화 글 모양새로 쓰여진 이 책이 우리의 살림살이를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할 수 있는 하나의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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