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부천 챔피언전 진출 일등공신 이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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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부천 SK를 삼성디지털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놓은 이을용(25)은 한때 축구에 환멸을 느껴 그라운드를 등졌던 풍운아.

이을용은 94년 강릉상고 졸업을 앞두고 축구에 관한 한 내로라하는 명문대에 진학하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다른 선수에 밀려 꿈을 접어야 했다.

강원도 황지초-강릉중-강릉상고를 거치면서 좋다는 이유만으로 축구공에 매달렸던 스무살 청년의 축구인생은 이 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대학에 가지 못한 이유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축구에 회의를 품은 이을용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두번째 좌절을 맛봐야 했다. `대학이 무슨 대수냐, 축구만 잘 하면 되지'라는 주위의 격려로 축구화끈을 다시 동여맸으나 청소년대표팀에서조차 탈락하자 이을용은 큰 상처를 안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다시는 축구를 하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이곳 저곳을 정처없이 방황했고 심지어 나이트클럽 웨이터도 하면서 인생의 쓴 맛을 봤다.

이러던 이을용은 한국철도 이현창감독에 의해 제2의 축구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고교시절 이을용의 기량을 높이 샀던 이현창감독은 전지훈련차 강릉에 머물다가 이을용의 소식을 접하게 됐고 이을용이 웨이터생활을 하던 제천까지 몸소 찾아가 설득했다.

이을용은 이감독의 끈질긴 설득에 한국철도(당시 철도청)소속 선수로 그라운드에 복귀했고 상무를 거쳐 97년 말 신인드래프트에서 부천의 지명을 받았다.

프로 입단을 결심한 97년 말 이효숙씨와 결혼, 안정을 찾은 이을용은 98년부터 부천의 막강미드필더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패싱력이 돋보이며 특히 왼발슛도 일품이다. 5일 열린 성남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왼발로 선취골을 뽑았었다.

98년 한중전과 99년 코리아컵대회에는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으며 176㎝, 69㎏의 체격으로 별명은 `감자'. (서울=연합뉴스) 박성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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