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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의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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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한국에 출판사가 몇 개나 있나요? 일주일에 책은 얼마나 나오죠? 흔히 받는 질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정확히 답해본 적이 없다. 근거로 제시할 만한 통계가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출판협회) 통계를 따르면 국내 출판사 수는 3만5000여 개다. 교보문고에서 2011년 신간 1종 이상 거래한 업체 수는 5750곳이다. 대표적 도매상인 송인서적에서 실거래하는 출판사 수는 2000개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출판사는 휴·폐업 신고를 해야 할 의무가 없는 실정인 데다, 이런 통계를 일일이 신경 써가며 총괄 집계하는 기구도 없기 때문에 누구도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발행되는 책의 종수도 마찬가지다. 출판협회 자료를 보면 2011년 신간 발행은 4만4036종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일반도서 납본수집 내역을 보면 7만9957종이다. 납본이란 국내에서 출판된 책을 국립중앙도서관에 보내는 제도다. 출판협회가 납본을 대행하는 경우가 있고, 출판사가 출판협회에 알리지 않고 개별 납본하는 경우가 있어 서로 통계가 다르다고 한다. 대형 서점이나 도매상의 기준이 또 다르다.

 출판사 수와 발행 종수에 대한 통계가 제각각이면 시장 규모를 측정하기 어렵다. 어느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 한국 출판시장의 규모를 어떤 자료는 2조8000억원으로 보는가 하면, 다른 자료는 3조8000억원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지난 60여 년간 한국은 여러 면에서 세계가 놀랄 정도의 발전을 ‘빨리빨리’ 이뤄냈다. 국내 출판시장도 규모 면에서 세계 10위권에 든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고속성장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출판 강국’이란 자랑이 무색하다.

 거시적 통계만 부실한 것이 아니다. 국내 출판계에는 작은 업체를 합쳐 크게 키우는 기업합병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 배경을 물어보니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판사 대표와 핵심 영업사원 이외에는 아무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출판사 실제 규모를 비교 측정할 객관적 근거가 거의 없다. 신뢰 부재는 베스트셀러 통계로 이어진다. 서점에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판매 통계를 그대로 믿는 출판인은 거의 없다. ‘사재기 베스트셀러’라는 오명은 부실 통계가 초래한 우리 출판계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출판사와 작가 사이에 종종 발생하는 ‘인세 갈등’도 문제인데, 이 또한 투명한 통계를 통해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신뢰 부재는 오프라인 종이책 시장으로 그치지 않는다. 전자책 확산이 더딘 이유도 출판사와 유통사 사이의 신뢰 부족 탓이 크다. 종이책과 전자책이 공존하는 새로운 시대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대세로 다가왔다. 출판계가 이제 새로운 발전을 위해 새로운 각오로 자체 점검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출판계의 새로운 도약은 업계 내의 신뢰 회복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