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 서산농장 '현대판 심청이' 운명

중앙일보

입력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전 명예회장의 '마음 속 고향' 인 충남 서산농장이 그의 손을 떠날 운명에 처했다.

현대건설의 자금상황에 따라 팔아야 할 형편이다.

서산농장은 鄭전명예회장에게 가난했던 선친.이북 고향(강원도 통천)에 대한 그리움이 서린 곳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서산농장을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돌밭을 일궈가며 고생했던 아버님의 인생에 꼭 바치고 싶었던 이 아들의 때늦은 선물' 이라고 적을 정도로 소중하게 여겼다.

올 3월 몽구.몽헌 형제 회장간 경영권 다툼이 시작됐을 때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찾아간 곳이다.

1998년 판문점을 거쳐 방북했을 때 몰고 간 황소를 키운 곳도 서산농장이다.

서산농장은 70년대말 중동 건설 경기가 가라앉자 건설인력과 장비를 활용하기 위해 鄭전명예회장이 16년 동안 바다를 메워 만든 간척지다.

총면적이 3천1백23만평으로 서울 여의도의 30배요, 김해평야와 맞먹는다.

84년 2백70m 정도 남은 물막이 공사가 어려움에 부닥치자 고철 ?떼굼?가라앉혀 물줄기를 막은 '정주영식 공법' 으로도 유명하다.

수천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간 서산농장은 그러나 채산성은 떨어졌다. 지난해 이곳에서 수확한 쌀은 25만8천여가마로 마지기당 평균 생산량이 일반 농가의 절반 수준인 1.8가마에 불과했다.

염분 농도가 높고 토양이 사력질이기 때문이다.

현대는 일부를 공장용지로 바꿔 공단을 만들려고 했지만 정부는 농지로 돼있는 이곳의 용도변경을 허용하지 않았다.

주변에선 鄭전명예회장이 서산농장의 운명을 모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건강이 나빠 서울중앙병원에 장기 입원 중인 그에게 차마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못했으리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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