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준의 ‘스트레스 테스트’,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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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호 25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RB)는 미 19개 대형 은행을 상대로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 은행 자산건전성 심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지난 14일 15개 은행이 심사를 통과했다. 그런데 오해는 마시라. 굵직한 은행들 대부분이 이번 테스트에 통과했다고 해서 2008년 같은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독자 생존할 수 있다고 안심하긴 이르다는 것이다.
기업 활동에서 자기자본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흡수하는 ‘쿠션’이다. 그런 측면에서 연준이 통과 기준으로 제시한 자기자본비율 5%는 쿠션 작용을 할 수 없다. 현실과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연준의 기준인 일반적 자기자본 대신 유형자기자본(Tangible Common Equity·TCE)을 적용하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TCE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많은 투자자들이 기업의 자본 상태를 판단할 때 활용한 지표다. 주주가 보유한 보통주를 중심으로 자기자본을 산정한다. 사실상 부채에 가까운 우선주나 영업권(장부가치 이외의 브랜드가치 등 기업 프리미엄)과 같은 추상적 무형자산은 제외한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이번에 심사를 통과한 대출 중심 은행 리전스파이낸셜을 보자. 이 은행은 2008년 미 의회가 마련한 구제금융안 ‘부실자산 매입 프로그램’에서 받은 구제금융 자금을 아직 갚지 못했다. 특히 장부상 부채는 81억 달러인 데 비해 TCE는 76억 달러였다. 부채가 부풀려진 것이 아니라면 리전스파이낸셜의 유형자기자본비율은 마이너스다. 회사의 순자산이 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리전스파이낸셜의 그레이슨 홀 최고경영자(CEO)는 연준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두고 “회사 재무가 튼튼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반겼다. 심사 결과 발표 이후 리전스파이낸셜 등 대형 은행 주가는 급등했다. 리전스파이낸셜은 곧바로 9억 달러어치의 보통주를 공개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식 판 돈은 2008년 미 재무부에서 빌린 35억 달러 일부를 갚는 데 쓰겠다고 한다.

이런 일들을 보면 연준의 스트레스 테스트는 그냥 웃자고 한 일이 아닌가 싶다. 회사가 위기를 맞았을 때 투자자와 거래처에 의미 있는 회사 자산은 회사가 짊어져야 할 부채가 아니라 회사의 실제 가치가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연준의 테스트 기준은 유동성이나 시장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는다. 현재의 적정가치를 측정하기엔 한계가 있다. 가령 한 은행이 보유 채권에서 평가손을 입었다면, 연준은 만기가 되지 않는 한 손실로 계산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시장은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연준의 스트레스 테스트에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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