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왕리쥔, 보시라이의 심복서 정치 몰락 ‘자객’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용인불찰(用人不察·사람을 쓰면서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중국 정계의 풍운아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당서기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지난 9일 전국인민대표대회 분임토의장에서 자청한 기자회견에서였다. 그러나 정치적 낙마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자성이었다.

 권력의 정점인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던 야심가의 정치 생명은 복심이자 최측근 인물에 의해 끝났다. 바로 왕리쥔(王立軍) 충칭시 부시장이다. 보 서기는 2007년 10월 상무부장(장관)에서 충칭시 당서기로 사실상 좌천되자 중앙 정치 무대 복귀를 노리며 절치부심했다. 그는 ‘범죄와의 전쟁’을 회심의 카드로 생각했다. 이때 발탁한 인물이 왕리쥔이었다. 보 서기가 랴오닝(遼寧)성 당서기 시절 눈여겨봤던 인물이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거침 없었고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찰떡궁합을 과시했던 두 사람 관계는 지난달 2일을 기점으로 완전히 틀어졌다. 왕 부시장은 겸직하던 공안국장 자리에서 경질됐다. 나흘 뒤 왕 부시장은 충칭에서 약 300㎞ 떨어진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의 미국 영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시도했다. 중국 정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보 서기와 왕 부시장이 적대 관계로 돌아선 배경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일각에선 당 중앙기율검사위의 지난해 12월 왕리쥔 비리 조사가 계기가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율검사위 서기는 충칭시 당서기를 지낸 허궈창(賀國强·정치국 상무위원)이다. 당시 기율검사위는 왕 부시장이 2000년대 초반 랴오닝성 톄링(鐵嶺)시 공안국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의 비리를 포착했다고 한다. 궁지에 몰린 왕 부시장이 보 서기에게 구명을 요청했으나 보 서기가 거절하면서 왕 부시장이 이판사판 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왕 부시장은 “(보 서기는) 역사상 최대 간신이다. 이런 간신이 권력을 잡으면 중국의 미래에 재난”이라고 보 서기를 맹비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도를 넘어도 한참이나 넘은 하극상이다.

 중국과 미국의 외교 마찰로 비화될 뻔한 이 사건은 보 서기의 해임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보 서기는 9일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서 인사 실패를 일부 인정했으나 자진 사퇴를 하지 않고 버텼다. 이 자리에서 보 서기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취임 이후 10년간 충칭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는 언론 질문에 “후 주석이 충칭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후 주석이 결국엔 충칭을 방문할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미국에 서버를 둔 인터넷 매체인 둬웨이(多維)는 “보 서기의 이런 발언은 후 주석을 궁지로 내몰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발언 직전에 이미 보 서기의 충칭시 당서기 해임은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14일 전인대 기자회견장에서 보 서기를 겨냥해 “반성하라”고 공개 비판을 했고, 하루 만에 보 서기의 경질이 보도됐다. 보 서기는 정치국원 자리는 유지했지만 정치적으로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의 치명상을 입었다는 분석이 대세다.

민경원 기자

보시라이 해임 파문 일지

2007년 10월 :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 부임
2008년 6월 : 보 서기, 왕리쥔을 시 공안국장에 발탁
2009년 8월 : 충칭시 대대적인 ‘범죄와의 전쟁’ 시작
2010년 7월 : 원창 충칭시 전 사법국장 사형. 공청단 타격
2012년 2월 2일 : 왕리쥔 충칭시 공안국장 직위해제 (부시장 직은 유지)
6일 : 왕리쥔, 쓰촨성 청두의 미국 영사관 망명 시도
7일 : 황치판 충칭시장, 미 영사관 포위 뒤 왕리쥔 안전부 요원에 연행
13일 : 시진핑, 미국 등 순방 위해 출국, 23일 귀국
20일 : 중공 정치국 회의
21일 : 홍콩의 중국인권정보센터 “보 서기, 20일 정치국 회의 때 사직서 제출”
22일 : 홍콩명보 “보 서기, 충칭 당서기와 정치국원 자리 모두 내놔” 보도
28일 : 황치판 충칭시장 “보 서기 사직설은 헛소리” 일축
3월 5일 : 보 서기 전인대 참석 “공평한 분배와 고속성장은 병행 가능” 주장
7~8일 : 정치국 회의, 보 서기 해임 결정 추정
8일 : 보 서기, 전인대 2차 전체회의 전격 불참
9일 : 보 서기, 기자회견에서 “사람(왕리쥔)을 잘못 썼다”
14일 : 원자바오 총리 “왕리쥔 사건에 대해 충칭시 당위(보 서기) 반성하라” 직격탄
15일 : 보 서기 해임, 장더장이 후임. 왕리쥔도 해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