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관오리와 함께 묻히려 관 들고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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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쭈롼

“지난해 12월 시위 당시 나는 주민들에게 100개의 관을 준비하도록 했다. 99개는 탐관오리를 매장하기 위해, 나머지 하나는 나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상복을 입고 관을 들고 부패한 관리들을 상대로 항의 시위를 했다.” 중국 광둥(廣東)성 우칸(烏坎)촌 린쭈롼(林祖<947E>·67) 촌장(촌민위원회 주임). 그는 부패한 우칸촌의 기존 간부들이 농민들의 토지 33만여㎡를 헐값에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넘긴 데 반발해 촌민들이 지난해 9월 이후 6개월간 벌인 시위를 이끈 지도자다.

린 촌장은 중국 풀뿌리 민주주의 실험으로 평가돼 온 ‘우칸촌 사태’의 중대 고비였던 지난해 12월 무렵을 비장하게 회고했다. 당시엔 농민 쉐진보(薛錦波)가 수감 중에 갑자기 숨지면서 우칸촌 농민 시위가 극에 달했던 시점이다.

농민들의 주장이 당국에 의해 받아들여지면서 당국의 수배를 받아온 린 촌장은 1월 파격적으로 중국 공산당 우칸촌 지부 서기로 발탁됐다. 6812명이 참가한 가운데 3일 치러진 직선투표에서 6205표를 얻어 촌장에 선출됐다. 400여 년의 우칸촌 역사에서 첫 민선 촌장이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 최근호는 그와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면서 “우칸촌이 항쟁에서 자치로 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문답.

 -우칸촌이 마침내 승리했는데.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영원한 승리란 없다. 이번 직선은 첫걸음을 잘 내디뎠지만 시작일 뿐이다.”

 -안후이(安徽)성 샤오강(小崗)촌의 경제개혁에 빗대 우칸촌의 정치개혁을 주목하는 시각이 있다.

 “그런 비교는 맞지 않다. 우리는 우리들의 일을 했을 뿐이다. 찬양도 비판도 받지만 촌민을 위해 실질적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촌민 자치의 성과는.

 “전국 범위에서 1인1표 직선제를 시행하는 곳이 아직은 적다. 직선제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우칸촌에서 선거를 해보니 전체적으로는 좋았다. 주민과 당국의 시각이 다른 것도 정상적인 것이다.”

 -촌민위원회의 최우선 임무는.

 “첫째로 빼앗긴 토지를 되돌려받는 문제다. 농민이 자신의 땅을 되찾는 것이 합법적이라는 본질을 따져보면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둘째로 제도를 갖추는 일이다. 기존 촌 간부들이 부패하게 된 것도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지매매 장부가 공개되지 않고 투명하게 일이 처리되지 않다 보니 부패하고 말았다. 권력을 감독하고 견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칸촌의 미래를 위한 복안은.

 “촌민위원회가 제도적으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도록 한 뒤 나는 적당한 때에 물러날 것이다. 학교를 세워 유망한 젊은이들에게 기술교육을 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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