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일본 시리즈 역사 (3)

중앙일보

입력

1979년 일본 시리즈에서 격돌한 팀은 히로시마 카프와 긴데쓰 버팔로즈.

4년 전 창단 이래 처음으로 센트럴 리그를 제패하였으나 경험 부족으로 인해 일본 시리즈에선 한큐에게 완패 당했던 고바 감독의 히로시마 카프.

창단 이래 처음으로 퍼시픽 리그를 제패하며 '회색 구단'의 불명예를 씻어버린, '비운의 감독' 니시모토가 이끄는 긴데쓰 버팔로즈.

두 팀 모두 일본 시리즈 처녀 우승을 놓고 격돌하는 팀들이어서 그 기세는 누구의 우위도 점칠 수 없을 정도로 막상 막하였다.

히로시마가 3, 4, 5차전을, 긴데쓰가 1, 2, 6차전을 잡아 결국 두팀은 7차전에서 마지막 자웅을 겨뤄야 했다.

엎치락 뒷치락 한 끝에 결국 9회말 긴데쓰의 마지막 공격. 상황은 히로시마의 4대3 리드. 팀의 마무리인 에나쓰가 마운드에 선 상황이어서 히로시마 벤치는 다소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위기에 몰린 긴데쓰의 니시모토 감독은 타자들에게 초구 부터 적극 공략할 것을 주문했다.

9회말, 니시모토 감독의 주문에 따른 긴데쓰 타자들의 파상적인 공격이 시작된다. 선두타자에게 초구에 안타를 맞기 시작하며 정신없이 공격을 당하던 에나쓰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상황은 무사 만루.

구장을 가득 매운 상대 팬들과 상대 벤치의 함성 속에 이 베테랑도 순간 흔들렸다.

어렵사리 후속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고서도 여전히 상황은 1사에 만루 위기. 그러나, 바로 이 상황에서 부터 그 유명한 '에나쓰의 마술'은 시작된다.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잡고 포수와의 싸인을 주고 받던 에나쓰는 제2구째를 던지기 위해 왼손을 톱에 올린 순간, 상대방의 스퀴즈 작전을 눈치 챘다. 등 뒤의 3루 주자가 홈을 향해 스타트하는 것을 직감한 것.

그러나 여기서 투구 동작을 멈추면 보크가 되어 1사 2, 3루에 4대4 동점이 되는 상황이 되고, 그대로 던져도 똑같은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에나쓰는 일순간 갈등에 빠졌다.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에나쓰는 결국 피치 아웃을 선택했다. 포수와 커브 싸인을 주고 받았던 에나쓰는 커브의 그립을 잡은 상태에서 그대로 피치 아웃을 하였다.

시리즈의 명운을 그 공 하나에 걸고서.

고맙게도 포수 미즈누마도 그 순간 스퀴즈를 감지 해내었고, 에나쓰가 '싸인 없이' 피치 아웃한 공을 일어 서며 무사히 잡아내 들어오는 3루 주자를 터치 아웃 시키며 위기를 모면, 히로시마측 덕아웃과 관중석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린다.

긴데쓰측 덕아웃의 니시모토 감독은, 자신이 내린 작전이 처참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며 그대로 주저 앉고 만다.

이쯤 되면 분위기는 히로시마와 에나쓰의 것. 실실 웃으며 다시 마운드에 오른 에나쓰는 긴장 상태의 타자를 향해 몸쪽 에서 오다가 뚝 떨어지는 드롭성 커브를 구사, 삼진을 유도해 내며 소속팀 히로시마에 프랜차이즈 사상 첫 일본 시리즈 패권이라는 기쁨을 안겨 준다. 본인으로써도 처음으로 느껴보는 희열.

이 기적과도 같은 희대의 투구 기술로 에나쓰는 "피칭이 아니라 예술이었다."이라는 야구팬들 및 관계자들의 칭송 속에, 일본 프로야구 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낸 주인공으로써 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히 회자 되고 있다.

'공 하나'가 바꾸어 놓은 일본 시리즈의 역사들. 이번 'ON 시리즈'에서는 과연 어떤 '공 하나'가 시리즈의 향방을 바꿔 놓고,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될지 지켜 보도록 하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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