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조라나 페르미온’ 발견 ... 유명세 싫어 논문 거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1호 28면

미국 물리학회는 전통적으로 매년 3월 봄 학회를 연다. 올해 보스턴 학회에선 발표 논문 가운데 ‘마조라나 페르미온(Majorana Fermion)’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화제가 되고 눈길을 끌었다. ‘마조라나 페르미온’이란 낯선 단어는 좀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100년 전, 장화같이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끝 시칠리아섬의 ‘카타니아’라는 소도시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이름은 ‘에토레 마조라나’(사진). 아이는 어릴 때부터 수학에서 천재성을 나타냈으나 아주 내성적이어서 책상 밑에 숨어 문제를 풀곤 했다.

김제완의 물리학 이야기 내성적 천재 에토레 마조라나

17세에 로마대에 입학해 22세엔 ‘원자 스펙트럼’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런 활동이 저 유명한 이탈리아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1901~54·193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눈에 띄었고 마조라나는 그때부터 페르미와 함께 일하게 된다. 그때 지도교수 페르미는 마조라나보다 다섯 살 연상이었다. 뉴질랜드 태생인 러더퍼드가 ‘초미니 태양계’ 원자모형을 내놓고 퀴리 부인이 발견한 방사성원소 라듐을 이용해 무거운 원소들의 내부를 연구하고 있을 때였다.

그즈음 퀴리 부인의 딸 이렌 퀴리(1935년 노벨 화학상 수상)와 그 남편이 어머니의 뒤를 이어 무거운 원소들을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들의 결론은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입자에 의해 양성자가 튀어나오는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알려진 기본입자는 양성자, 전자 그리고 광양자(감마선이나 빛 같은 전파에너지의 알갱이)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양성자가 튀어나오는 반응을 유발한 것은 광량자라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마조라나의 생각은 달랐다. 양성자 정도로 무거운 입자를 쫓아내 원소 질량의 변화를 일으키고 다른 원소가 되게 만들 정도라면 무게조차 없는 가벼운 감마선 알갱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양성자와 무게가 비슷한 중성입자, 즉 전기를 띠지 않는 양성자 정도의 질량을 가진 새로운 입자가 있어야만 비슷한 무게의 양성자를 밀어낼 수 있다고 추론했다.

이 ‘양성자 정도의 질량을 가진 새로운 입자’는 그때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중성자를 예언한 것이다. 페르미는 마조라나의 생각을 듣자마자 논문을 쓰라고 권했다. 하지만 내성적인 마조라나는 더 이상 주장하지 않았고, 이 중요한 이론을 논문으로도 남기지 않았다. 몇 년 뒤 마조라나와 같은 추론을 한 채드윅이 중성자 발견을 주장했고 193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마조라나는 그 이외에도 과학 역사에 길이 남는 두 가지 일을 더 했다. 첫째는 ‘중성미자’ 또는 ‘뉴트리노’라는 이름을 가지는 작은 소립자에 관한 연구였다.
빛은 원자 속의 전자가 이동하거나 전기를 띤 물체가 움직일 때 나온다. 태양을 예로 들어 보자. 태양 속에선 수소들이 핵융합을 해 에너지를 만든다. 융합으로 생기는 막대한 에너지가 밖으로 전달되면서 태양 표면을 섭씨 6000도 정도의 이온화된 가스로 변화시킨다. 이때 전자가 움직이고 이온화된 원자의 변화가 생겨서 빛이 나온다.

그때 원자 속의 원자핵도 변화하는데 그 과정에서 중성미자가 나오게 된다. 원자의 변화에서 나오는 것이 빛이고 원자핵의 변화가 방출하는 것이 중성미자다. 이런 뜻에서 중성미자는 제3의 빛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연광은 제1의 빛, 레이저는 제2의 빛이라고 할 때 중성미자는 제3의 빛이다.
제3의 빛 중성미자는 빛의 알갱이인 광량자보다 훨씬 더 많이 태양에서 날아온다. 태양으로부터 지구 표면 1㎠의 면적으로 매초당 약 2000만 개의 광량자가 날아오는데 중성미자는 그보다 훨씬 많은 100억 개 정도다. 빛은 눈에 보이고 잡히지만 중성미자는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다. 우리들이 못 느끼고 있지만 태양은 이 제3의 빛을 끊임없이 쏟아붓고 있다.

마조라나는 이런 중성미자가 ‘자기 자신인 동시에 자기의 반입자’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동물로 따지면 수컷인 동시에 암컷인 양성 동물이라는 얘기다. 정말 획기적인 이론이다. 자기 업적을 기록하는 데 소극적인 마조라나는 이렇게 중요한 이론을 또 논문으로 쓰지 않았다. 페르미는 논문으로 쓰라고 권해도 보고 야단도 쳤지만 소용없었다. 답답해진 페르미는 자기 손으로 중성미자 이론을 써서 마조라나의 이름으로 학술지에 게재했다(제자의 업적을 자기 이름으로만 발표하는 한심한 과학자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70년 전에 쓰인 이 논문을 시작으로 스스로가 스스로의 반입자인 소립자들을 ‘마조라나 페르미온’으로 분류한다.

올해 봄, 보스턴 물리학회에선 ‘마조라나 페르미온 발견 논문’을 쓴 벨기에 델프트대의 쿠벤호벤 초청 강연이 있었는데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강당이 꽉 찼다. ‘빛보다 빠른 입자’의 발표가 허구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요즘, ‘마조라나 페르미온’의 발견은 의미가 새롭다. 그럼에도 그 발견에 70년 세월을 기다렸으니 좀 더 시간을 두고 과학적으로 소화해야 할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