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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계·노무현계 … 계파 공천 숨은 코드는 ‘배반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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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5일 오전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총선 야권연대 방안에 대해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와 회담하기에 앞서 웃음을 짓고 있다. [김형수 기자]

공천(公薦)은 메시지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공천 메시지가 분명해지고 있다. 정당이 습관처럼 되뇌온 화합이나 통합 같은 좋은 말이 아니라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새누리당 공천의 큰 그림은 ‘박근혜계+탈이명박(MB)계’다. 새누리당은 6일까지 246개 선거구 중 102곳(41%)의 단수 공천을 확정했다. 그러면서 5일 하루에만 현역 의원 16명을 날렸다. 곧 발표할 영남권 공천에서도 큰 폭의 물갈이를 예고한 상태다. 새누리당보다 많은 123곳(50%)에 단수 공천자를 정한 민주통합당이 현역 의원을 6명만 탈락시킨 것과 대조적이다.

 칼날은 이명박계를 조준하고 있다. 한때 최측근이었다가 MB진영으로 ‘전향’한 뒤 당내에서 ‘박근혜 저격수’ 역할을 해온 전여옥 의원, 청와대 재직 시절부터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각을 세웠던 이동관 전 홍보수석, 박 위원장과 긴장관계였던 이재오계 핵심 의원들이 줄줄이 낙마하거나 공천에서 멀어졌다. 살아남은 MB계 의원들은 정두언 의원처럼 일찌감치 MB와 거리를 뒀거나 ‘월박(越朴)’한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에 비해 미지근하다. 4년 전 통합민주당 시절 ‘공천 특검’이란 말까지 들어가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씨를 쳐냈던 ‘박재승 공천’의 화끈함은 없다. 현역을 자르는 공천이 아니라 전·현직 의원의 ‘재활용 공천’을 하고 있다. 4년 전의 트라우마 때문인 듯하다. ‘공천엔 이기고 선거에 졌다’는 게 민주통합당의 ‘박재승 트라우마’다. 이번엔 공천엔 지더라도 선거엔 이기겠다는 계산으로 ‘실전용’ 인사를 배치하고 있다. 다만 재활용된 인사들은 ‘노무현계+열린우리당(범친노그룹)’이 옛 민주계보다 확연히 많다.

 같은 관료 출신이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한 김진표·이용섭 의원은 살아남고, 김대중 정부의 각료였던 강봉균·최인기·신건 의원은 날아갔다. 똑같이 비리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지만 동교동계 원로인 한광옥 전 의원은 경선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열린우리당 출신 이부영·신계륜·임종석·이화영 전 의원 등은 공천을 받았거나 경선 기회를 얻었다. 이명박계와 동교동계가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낄 만하다.

 박근혜계와 노무현계도 ‘악몽’을 공유하고 있다.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되고 기가 막힌 공천” “어마어마한 음모” “귀신 같은 이야기”….

 감정의 기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박근혜 위원장이 이런 격한 말을 쏟아낸 적이 있다. 2008년 3월 13일 기자간담회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 공천을 약속해놓고도 박근혜계 의원들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열흘 뒤 박 위원장은 다시 한번 기자간담회를 열어 “저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을 남긴다.

 노무현계엔 ‘탄핵’의 기억이 있다. 2004년 노 대통령 탄핵안은 한나라당뿐 아니라 옛 민주당(새천년민주당) 의원들의 동조로 국회를 통과했다. 그보다 2년 앞선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엔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가 결성됐다. 노무현 후보를 낙마시키려는 모임이었다. 당시 후단협 결성 에 있어 중심 역할을 했던 이가 민주통합당 공천에서 탈락한 정균환 전 의원이다. 이런 ‘배반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박근혜 위원장이나 노무현계가 이명박계와 옛 민주계를 쳐냈을 때의 내홍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러나 양쪽 모두 그 정도는 개의치 않을 태세다.

 새누리당 황영철 대변인은 6일 영남권 현역 물갈이 폭과 관련해 “어떤 물꼬를 트는 희생이 아마도 많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4년 전 박근혜계가 ‘공천 학살’에 반발했을 당시 강재섭 대표는 “큰 물결에는 귀한 물건도 떠내려갈 수 있다”고 했는데, 요즘 박근혜계의 분위기가 그렇다.

 한광옥·정균환·이훈평 전 의원 등을 낙천시켜 동교동계의 집단 반발을 몰고 온 공천 하루 뒤인 지난 1일 노무현계의 좌장 격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트위터에 “점차 개혁 공천의 면모가 보입니다”라고 당 공천심사위원회를 독려하는 글을 썼다.

 박 위원장이나 노무현계나 연말 대선까진 지지율 하락을 포함해 여러 차례 고비를 만날 수밖에 없다. 이때를 위해서라도 ‘배반의 싹’은 미리 잘라버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런 점에서 ‘총선용 공천’이라기보단 ‘대선용 공천’에 가깝다. 총선 너머 대선까지 시선을 둬야 하는 게 이번 공천의 ‘감상법’이다.

뉴스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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