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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가사끼 짬뽕 잘 팔리네" 투자했다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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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앞둔 2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내 면세점의 화장품 코너. 외국인 관광객과 해외여행을 앞둔 한국인들로 북적였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국내 화장품 시장은 커졌지만 저가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업계의 전반적 수익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최정동 기자

#1. 뉴욕 월가의 가치투자 분야 대가이자 피델리티 부회장을 지낸 피터 린치는 1970년대 부인이 레그스(L’eggs)라는 고탄력 스타킹을 사서 신는 걸 보고 투자 힌트를 얻었다. “수퍼마켓에서 샀는데 올이 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잘 맞는다”는 말에 ‘이거다’ 싶었다. 당장 수퍼에 가 보니 플라스틱 달걀 모양 용기에 담긴 레그스가 계산대 옆에 진열돼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이 제품을 내놓은 헤인스(Hanes)의 ‘기업분석’에 들어가 거액을 투자했다. 큰 재미를 본 것은 물론이다.
#2.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자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손에서 코카콜라를 놓지 않는다. 콜라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코카콜라는 그의 투자 자산 중 으뜸을 차지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1987년 처음 투자할 때 그의 발상은 의외로 단순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코카콜라를 입에 달고 살더라”는 것이었다. 25년간 이 회사 주식 투자로 90억 달러(약 10조원)의 수익을 올렸다.

피터 린치의 레그스 투자나 워런 버핏의 코카콜라 투자는 일상생활에서 쉽사리 접하는 대상에서 얻은 투자 아이디어다. 사소한 경험에서 실마리를 찾아 투자하는 ‘일상생활 투자법’이 근래 국내 주식 투자자 사이에 각광받고 있다. 주가 그래프를 활용하는 ‘기술적 분석’에 매달리기보다 당장 일상생활에서 써봐서 좋은 제품,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을 콕 찍어 투자하자는 것이다. 저평가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가치투자자들이 주로 쓰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처럼 쉽다면 누군들 돈을 못 벌겠는가. 현실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제품의 인기가 한때의 쏠림 현상에 그친다면 주가가 오르다가 금세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런 발상을 너무 확대 적용하다 보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테마주에 엮여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생활 속 투자의 허와 실을 짚어보자.

일상생활 투자법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분야는 라면·의류·화장품 같은 소비재다. 이들 업종은 이른바 ‘립스틱 효과’ 덕을 본다. 경기가 둔화할 때 살림이 팍팍해진 소비자들이 립스틱처럼 그리 비싸지 않은 제품을 구입해 소비 욕구를 충족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래서 생활용품 판매량이 늘어나곤 한다. 특히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경기둔화가 본격화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이런 경향이 뚜렷했다. 꼬꼬면 같은 ‘하얀 국물’ 라면 열풍이나 패스트 패션(짧은 유행을 따라 싸게 구입해 입는 옷)의 인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요즈음엔 단순히 저가 제품이 아니라 등산복이나 스마트폰처럼 수요가 몰리는 제품을 립스틱 효과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갭(GAP)·H&M·아베크롬비 같은 해외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하는 한세실업의 경우 최근 1년간 주가가 두 배가 됐다. 패스트 패션의 인기로 지난해 영업이익이 688억원으로 전년 대비 86%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장정은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존 납품업체가 안정적이고 H&M 같은 신규 거래처를 확보한 덕분에 5년간 연평균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8%, 2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영원무역도 1년 새 주가가 두 배 이상이 됐다. 이 회사는 중·고생 사이에 ‘제2의 교복’으로 불리는 등산복 노스페이스를 OEM으로 생산한다. 전 세계 판매 물량의 25%를 만든다.

그런데 섣불리 ‘인기 제품=주가 상승’으로 인식하고 접근하면 고전하기 쉽다. 가치투자 고수로 꼽히는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현재의 인기가 지속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반짝 인기에 그치거나 경쟁이 격화되면 지속적인 주가 상승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화장품 업계를 예로 들었다. 중국·일본인 관광객 증가로 국내 화장품 수요는 늘었지만 저가 업체의 난립으로 전반적인 화장품 업계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주가도 떨어졌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화장품은 총 10조8200억원어치로 전년보다 9.6% 늘었다. 2005년 7조원대를 넘어선 이후 매년 꾸준히 성장해 왔다. 그런데도 국내 최대 화장품 업체인 아모레퍼시픽의 성장세가 둔화해 주가가 석 달 새 10% 가까이 떨어졌다. 한국화장품은 지난해 적자를 냈고, 코리아나화장품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4% 줄었다.

삼양식품 주식을 산 직장인 최모(34)씨도 일상생활 투자법에 따랐다가 손해 본 경우다. 그는 지난해 12월 하순 삼양식품 300주를 주당 4만6000원에 매입했다. 대형마트에서 이 회사의 하얀 국물 라면인 ‘나가사끼 짬뽕’이 잘 팔리는 걸 본 뒤였다. 이 회사 주식이 5만6000원까지 오른 적이 있다는 점도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지만 삼양식품 주가는 줄곧 약세를 보인 끝에 지난 2일 3만6450원으로 마감했다. 매입 금액의 20%(총 270만원)가량 평가손을 본 상태다. 김경오 신영증권 연구원은 “삼양식품의 지난해 실적이 개선됐지만 올 들어 판매 증가세가 둔화된 것이 주가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나가사끼 짬뽕은 지난해 8월 출시 후 판매가 급증하다가 지난해 12월 2100만 개가 팔린 것을 정점으로 정체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라면업계가 너도나도 하얀 국물 라면을 출시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지난달 주가가 급등하자 삼양식품 대주주 일가 3세가 소유한 기업이 삼양식품 지분을 대거 매도한 것도 주가 하락을 부추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품이 회사의 핵심 제품인지 따져볼 필요도 있다.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VIP투자자문의 최준철 대표는 “오뚜기는 하얀 국물 라면인 ‘기스면’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전체 사업 내 기스면 비중이 크지 않아 주가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생생활 투자법을 테마주와 헷갈려서는 곤란하다. 10여 년 전 베스트셀러 제목인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는 식의 ‘나비효과 투자법’이 일례다. 브라질 강수량이 늘면 커피 원두의 수확량이 늘어 더 싼값에 원두를 공급받는 스타벅스의 이익이 증가할 것이라는 식이다. 언뜻 이해하기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실행하려면 원자재 가격과 환율·경기선행지표 등 거시 변수의 흐름을 꿰뚫는 글로벌 헤지펀드 매니저급 전문 투자자의 영역이다. 문제는 이런 논리로 포장한 테마주에 일반인들이 현혹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근래 주목받은 ‘애그플레이션(곡물 가격 급등) 테마주’가 대표적이다. 중국이 60여 년 만의 큰 가뭄에 시달린다는 소식에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비료회사들의 주가가 2일 급등했다. 조비(14.43%)·효성오앤비(4.87%) 이야기다. 하지만 이들 두 회사는 모두 “중국 수출 물량이 없을뿐더러 내수판매만 하기 때문에 중국 가뭄과는 연관성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미국의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인 페이스북이 상장 추진을 선언하자 국내 SNS 관련 업체를 중심으로 ‘페이스북 수혜주’ 주가가 들썩였던 것도 비슷한 사례다. 최경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 상장기업 중 페이스북의 매출과 연계된 사업을 하는 기업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일상생활 투자법의 성공 비결은 뭘까. 피터 린치는 월가의 영웅이란 책에서 “상식에 근거하되 자신이 잘 아는 회사에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최준철 대표는 “히트 상품을 발견하면 끊임없이 다른 제품과 비교해 소비자 평판, 판매 증가 속도, 실적과의 연관성 면에서 우월한 제품에 투자하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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