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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교육감에게 전교조만 빼고 100% 등 돌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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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인사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곽 교육감은 후보자 매수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고, 오는 6일 2심 공판을 앞두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곽 교육감은 자신의 선거캠프 운동원을 포함한 전직 사립학교 교사 3명을 공립학교로 전격 발령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이들의 임용을 취소했다. 곽 교육감은 비서실 인원도 늘리고 있다.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과 안승문 교육희망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을 비서실 5급 사무관직으로 특채했다.

서울시교육청 일반직 공무원 노조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점희(52·사진) 위원장이 지난달 29일부터 교육청 정문 앞에서 1인 시위에 들어갔고, 그 다음날부터는 날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족한 이 노조에는 서울시교육청과 공립 초·중·고교 등에 근무하는 일반직 공무원 10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2일 오후 이 위원장이 행정실장으로 근무하는 서울 암사동 신암초등학교에서 이 위원장을 인터뷰했다. 진보 진영에서 나온 곽 교육감을 노조가 비판하는 이유가 뭔지를 물었다. 그는 “곽 교육감이 교육청을 사(私)조직화하고 있다”며 “인사 전횡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파업과 퇴진운동으로 이어가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청은 지난달 29일 이 위원장의 교육청 내부통신망 e-메일 발송 기능을 차단했다가 언론 보도가 나오자 2일 오전 복구시켰다. 이 위원장은 “교육청 직원 3000여 명을 대상으로 ‘곽 교육감의 인사전횡에 대한 감사 청구를 받기 위해 서명운동을 한다’는 내용의 e-메일을 보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경력 31년차인 이 위원장은 서울시 초·중·고 행정실장협의회 간사, 강동·송파지역 공립초등학교 행정실장협의회장 등을 맡고 있다.
 
-곽노현 교육감의 인사에 반발한 이유가 뭔가.
“원칙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5급 사무관직 2명을 특채한 거다. 사무관은 일반직 공무원의 꽃이다. 9급 주사에서 출발해 5급이 되려면 15년에서 20년 걸린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오르기 힘든 자리다. 그런 자리를 1명에서 3명으로 늘린 것도 모자라 자신의 최측근을 몽땅 데려다 앉혔다. 그걸 보는 공무원들 심정이 어떻겠나. (곽 교육감이 철회하긴 했지만) 비서실 7급 직원들을 2년도 안 돼 6급으로 무더기 승진시키겠다는 발상도 마찬가지다. 1인 시위하고 나서 일반직 공무원들로부터 공감한다는 e-메일을 꽤 많이 받았다. 한 지방교육청 계장님은 ‘7급에서 6급으로 승진하는 데 13년 걸렸다’면서 펑펑 울더라.”

-곽 교육감이 해명 기자회견에서 ‘우리 비서(현 7급)들은 5급으로 데려와도 시원찮은 분들인데 그동안 희생을 감수했다’고 주장했다.
“일선 학교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니 그런 말을 하는 거다. 자기 사람은 유능하고 나머지는 바보인가. 자기 사람만 희생했나. 우리 같은 행정직원들은 살인적인 업무량에 시달린다. 주말도 반납하고 일에 매달린다. 내가 올해로 공무원 생활 31년 됐는데 공립학교 행정직원 숫자는 30년 전이나 똑같다. 수요자 중심 교육 등이 추진되면서 업무량은 30배, 50배 많아졌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곽 교육감 취임 후 감사기능이 강화되면서 모든 걸 투명하게 하다 보니 서류 작업이 엄청나게 늘었다. 청렴도 강화라는 측면은 긍정적이지만 직원 수는 그대로니 우리만 죽어난다. 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근무하는 여직원의 하소연을 들었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분은 2009년에 2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는데, 일이 너무 많아 매일 자정 넘어 퇴근한다고 한다. 연애는 꿈도 못 꾼다. 기혼자들도 평일엔 가족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 힘들다. 현장은 이렇게 열악한데 교육감은 자기 사람 승진시키는 데만 몰두하고 있으니 누가 공감하겠는가. 곽 교육감은 현장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CEO가 현장을 모르는데 어떻게 제대로 지휘를 할 수 있나.”

-곽 교육감의 비서실 확대를 ‘비서실 정치’라고 비난했는데.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비서실 중 인원이 10명이 넘는 곳이 어디 있나. 진짜 심각한 문제는 소통이 안 된다는 거다. 본청 실·국장들은 ‘밑에서 아무리 의견을 올려도 비서실에서 다 막아버린다’고 비판한다. 지금 일반직 공무원들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뭔지 아는가. ‘교육감은 전교조 출신하고만 소통한다’는 거다. 이념이 다른 교원이나 일반직 공무원하고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곽 교육감은 “민선 교육감 시대에 비서실 위상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비서실은 그야말로 교육감의 업무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돕는 기능에서 그쳐야 한다. 곽 교육감은 비서실을 교육청 전체 업무를 기획하는 곳으로 바꿔버렸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행정하고는 따로 노는 거다. 곽 교육감의 최측근인 감사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지적이 있는 걸로 안다. 감사 받아 지적당하면 승진에서 밀리니 실·국장들은 끽 소리 못한다더라. 현장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감사관은 학교 근무 경험이 없는 외부인이라 조직을 잘 모른다.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하던 중 서류가 미비됐다거나 절차를 잘 몰라 실수해도 징계하는 일이 빈번하다.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누구든 조직의 장(長)이 되면 자기와 호흡이 맞는 유능한 손발과 일하고 싶은 것 아닌가.
“물론이다. 얼마든지 외부 인사를 데려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기존 공무원을 믿지 못하고 무시하니 문제다. 정말 개혁을 하고 싶다면 기존 교육행정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어온 사람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중에서도 인재를 찾아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곽 교육감은 취임했을 때부터 실무자들 의견을 거의 듣지 않았다. 교육감은 교원만의 수장이 아니다. 일반직 공무원의 수장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실무자는 빼놓고 비서실, 감사관하고만 의논한다.”

-행정직원 입장에서 건의를 한다면 어떤 건가.
“너나 할 것 없이 공교육 정상화를 부르짖는데, 초·중·고교 행정실을 대학교 행정실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다. 현실은 행정실장과 비정규직 직원 2명에 불과하다. 정규직 직원 4명만 데려다 놓으면 교사 잡무를 지금보다 훨씬 많이 덜 수 있다.”

-인사 실무를 맡았던 서울시 교육청 총무과장이 갈렸다. 일각의 지적처럼 ‘보복 인사’가 맞나.
“교육감이 연 기자회견에 총무과장이 나와 ‘자원해서 옮겼다’고 말했다.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다만 그분 자택이 구로구 오류동인데 출퇴근에 왕복 4~5시간 걸리는 경기도 가평 서울시 학생교육원으로 자원했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다. 기자회견에 그분을 참석하게 했다는 사실부터 화가 난다. 서울시 교육청 총무과장은 일반직 공무원의 수장 격이다. 그런 사람을 공개석상에 불러내 해명을 시킨 건 전체 일반직 공무원의 자존심을 깔아뭉갠 처사다.”

-곽 교육감은 총무·예산·자치과장 3명을 바꿀 시기가 돼서 바꿨다고 해명했다.
“보통 1년 정도 하면 바꿨다는 건데, 그렇지 않다. 서울시 교육청 일반직 공무원은 통상 (한 자리에) 적어도 2∼3년은 재직한다. 요직인 총무과장을 하다가 한직으로 갑자기
보낸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노조위원장의 교육청 내부통신망 e-메일 발송 기능을 차단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3000명한테 자꾸 교육감의 전횡을 규탄하는 내용을 알리니 의식화가 될까봐 두려워한 것 같다.”

-1인 시위 등 교육감에 맞서는 것과 관련해 근무처나 교육청에서 압력은 없나.
“압력이 있을 게 뭐가 있겠나. 자기들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데 속이 시원하면 시원했지.”

-전직 사립학교 교사 3명을 공모 절차 없이 공립학교로 발령 낸 인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경우엔 대개 공채를 한다. 난 교원이 아니니 그 문제에 대해선 더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곽 교육감은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일반 공무원은 형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직위해제되거나 업무수행에 제한을 받는데.
“(유죄 판결 받고 직무를 계속 수행하는 건)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스스로가 자중하느라 업무를 맡지 않는다. (이번 인사파동은) 2심 공판이 곧 열리고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 내 사람을 심어서 자기의 정책을 이어나가게 하려고 무리수를 둔 것 같다. 자기 생각만 하다 보니 남 생각은 못한 거다.”

-곽 교육감이 잘한 건 없나.
“학교마다 청렴도가 향상된 건 높이 평가할 만하다. 진심으로 인정한다. 교육감이 외치면 교장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문예체 교육 강화도 긍정적으로 본다. 지난해 우리 학교도 ‘1인1악기’에 예산을 편성했다. 정서 순화 차원에서 음악 교육 효과가 참 크다. 특히 저소득층 아동이 많은 지역에서 학교 예산으로 악기를 구입해 아이들에게 음악교육 혜택을 준다는 건 좋은 일이다. 진보교육감이라서가 아니라 좋은 거니까 받아들이는 거다.”

-교육청 일반직 공무원 노조는 선거 당시 곽 교육감을 지지하는 분위기였나.
“나를 포함해 대부분이 지지했다. 전임인 공정택 교육감 시절 일선에서 부정부패가 워낙 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곽 교육감한테 기대를 많이 걸었다. 진보 성향이고 깨끗할 테니 훨씬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전교조만 빼곤 100% 등 돌렸다.”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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