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여대 송경혜 교수 초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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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 이젠 그만 네 자리로 가.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도 없잖아."

"그럴순 없어. 나도 존재가 있어. 게다가 네가 불러낼 때도 많잖아."

한양여대 송경혜(48) 교수의 작품들은 과거의 사연과 현재의 마음이 주고받는 대화다.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18일~11월 5일 열리는 초대전 제목 '지움과 발견'에서 그것은 드러난다.

화면은 단순하다. 바둑판 모양으로 분할된 수백개의 네모꼴이 다양한 톤의 두어가지 주조색으로 채워져있을 뿐이다. 헌옷이나 쓰다남은 천조각을 잘라 캔버스에 얹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수십차례 덧칠한 결과다.

사각형들은 덧칠하고 다시 긁어낸 자국으로 인해 아래쪽의 바탕색들이 군데군데 떠올라 있다. 수많은 격자들이 모여 2~3m 높이의 대형 캔버스를 이루고 있다.

그 뿐이다. 그런데도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저것은 마음의 흔적이다. 그 대화다"라는 인상을 받게된다.

덧칠이 긁혀나간 흔적들과 다양한 표면의 질감들이 우리네 삶의 사연과 비슷해서일까. 수백개의 격자가 바둑판처럼 질서있게 모여 우리의 현실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은 나름의 기쁨과 슬픔, 망설임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는 해석일까.

만들었다 지우고 벗겨내는 과정을 되풀이한 표면은 지울수 없는 사연들의 짙고 옅은 농도를 나타내는 듯 하다.

관객은 작품마다 다른 감정을 느낀다. 바탕의 주황색을 지워버린, 지우려고 애쓴 '지움'같은 그림에서는 '잊자.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나갔잖아'라는 독백이 들린다.

검고 노란 격자들을 온통 다홍색으로 칠해버린 '영원'에서는 때론 흔들리지만 늘 위엄있는 따스함으로 살자는 기개가 느껴진다.

황금색이 섞인 다홍이 다소 장식적으로 보이는 것은 여기 저기 떠올라있는 바탕색들이 지워버리기에는 너무 묵직해서일까.

전시장 1층에는 색칠을 한 구식 여행용 가방들이 기차의 철로길을 연상시키듯 한 방향으로 놓여있는 설치작업도 선보인다. 여행지에서 주인의 사연과 기억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의미일 것이다.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한 작가는 미국 하트포드 미술대학원을 졸업하고 콜럼비아 대학에서 미술교육학 박사학위를 받느라 10년간 미국에서 유학했다.

그는 "오랜 외국생활 속에서 고독과 싸우며 견뎌냈던 수많은 시간들과 그속에 담긴 소중한 사연들이 사각형이라는 옷을 입었다"고 말했다.

02-720-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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