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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경제연구소를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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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김광수경제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국책연구기관도 아니고, 기업 산하 연구소도 아니다. 개인 김광수(53) 소장이 2000년 5월 만들고 꾸려 온 민간연구소다. 그는 일본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노무라연구소 서울지점에서 일했지만, 박사 학위는 없다. 그러나 그의 보고서를 아끼는 사람은 적지 않다. 돈을 내고 봐야 하는 유료 보고서인데도 말이다. 연회비는 종류에 따라 20만원부터 300만원에 이른다. 구독자들이 만든 인터넷 포럼의 회원은 10만 명에 육박한다.

 김 소장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연구소가 설립되기 전인 외환위기 때다. 그가 관가에 돌린 보고서는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부와 기업, 기존 경제학계에서 자유로웠던 그의 시각과 탄탄한 분석력 때문이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그중 한 명이다. 이 전 부총리는 2003년 연구소가 펴낸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의 추천서를 썼다. 그는 “한 번도 추천 글을 써본 적이 없지만 이 책에 한해 그 원칙을 포기하고 추천한다”고 적었다. 한 경제지의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순위에선 대기업 연구소를 제치고 19위에 오르기도 했다. 간판으로 내세울 명사도 없고, 돈 되는 강연도 마다한 채 경제 상황을 분석한 보고서로 이룬 성과다.

 그랬던 김 소장이 요즘 정치에 나섰다. 그는 20~40대 중심의 정치를 표방한 새세대희망당 창당을 주도하고 있다. 실력과 경험을 정치에 활용하는 것은 막을 수도, 나무랄 수도 없다. 그러나 아쉽다. 흔치 않은 독립적 민간연구소를 잃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의 보고서 독자 중에는 그의 시각에 동의하는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9년 “정부 외환보유액이 바닥났다”는 연구소 주장으로 촉발된 논쟁으로 그에게서 등을 돌린 사람도 적지 않다. 연구소 구성원의 적극적 사회 참여에 대해 응원도 있었지만, 연구소 본연의 기능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보고서를 읽어 온 이들이 있다. 한 전직 관료는 “찬반 여부를 떠나 내가 주류 연구소 시각에 매몰되는 걸 막기 위해 보고서를 봤고,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정치 선언으로 열정적 지지자는 늘어나고, 결집력은 커질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 구독자의 폭과 다양성은 줄어들 수 있다. 정치적 목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겠지만, 읽는 이의 시야에 정치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를 멀리한다고 해서 좋은 연구소는 아니다. 세계 1위 싱크탱크라는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민주당을 민다. 그러나 미국에는 후버·헤리티지 같은 보수적 ‘독립’ 연구소가 있다. 한국 연구소 생태계는 미국과 다르다. 그 무엇보다 정부·기업 산하 연구소에 대한 쏠림이 심한 게 문제다. 이런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성장한 독립 연구소 소장의 정치 참여는 그래서 안타깝다. 그게 제 몫을 못한 정치권의 탓이라면 분하고, 연구소의 과욕이라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