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레이펑 정신’에 어긋나는 탈북자 북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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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28일 오후 중국 외교부 외신 브리핑 현장. 기자는 물었다.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과 인민일보 등에서 연일 레이펑(雷鋒·1940~62)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레이펑 정신의 핵심은 ‘(어려움에 처한) 인민을 돕는 것을 기쁨 삼는다(助人爲樂)’는 것 아닌가. 탈북자가 북송되면 학대를 받다 죽을 수도 있다. 레이펑을 배우자는 캠페인 기간인데 탈북자 북송을 재고해 보는 게 어떤가.”

 돌아온 답은 “10번도 넘게 국경을 넘은 것을 돌려보낸 사람도 있다. 조직범죄다. 경제 문제 때문에 월경한 그들을 난민으로 볼 수 없다”였다.

 헐벗고 굶주려 ‘탈북’이라는 생의 마지막 선택을 감행한 북한인들을 잡아 사지로 돌려보내는 중국이 정작 자국 인민에겐 도덕 재무장을 강조한다. 이런 두 개의 잣대가 보여주는 부조리를 지적하고 싶어 한 질문이다.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몇 주간 되풀이해온 답변을 다시 내뱉을 뿐이다.

 매년 2월 말~4월 초 중국의 관영 매체들은 ‘레이펑 정신을 배우자’는 범국민 캠페인을 벌인다. 1963년 3월 5일 마오쩌둥(毛澤東)이 이 운동을 주창한 이래 계속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올해 특별히 더 강조하고 있다. 고아 출신인 레이펑은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회주의 모범 인간으로 추앙됐다. 인간됨의 회복을 주창하며 레이펑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중국은 또한 유구한 정신문화를 앞세워 적극적인 국가 이미지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곤궁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레이펑 정신이야말로 사회주의 중국의 핵심 가치라고 설파한다. 그래서 또 물었다. “레이펑 정신을 북한에 적용한다면 도와야 할 대상은 김정은 정권인가, 아니면 북한 인민인가.” 그러자 “조직적인 불법 월경은 어느 나라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동문서답(東問西答)이 돌아왔다.

 베이징 시내의 택시 안에서 들은 해석이나 외교부 브리핑장을 경비하는 초병의 설명이나 한결같았다. 이해타산 따지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대가 없이 돕는 것. 그것이 레이펑 정신이라는 것. 중국의 인민들은 레이펑 정신의 참뜻을 잘 알고 있었다. 기차표를 잃어버린 모자(母子)에게 자신의 표를 내주고, 먼 거리를 걸어간 레이펑을 떠올리면 당연히 나오는 결론이다.

 하지만 ‘국내용 인도주의’를 외교 현안에 적용하는 질문이 못마땅해서였을까. 이날 저녁 중국 외교부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브리핑 전문에 레이펑 얘기는 빠져 있다. 질문도 바뀌어 있었다. “탈북자가 돌아가면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데 중국은 실질적으로 도울 생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