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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출가 양정웅, 오페라 리모델링 하는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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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오페라 ‘연서’에서 도실과 아륵을 연기하는 소프라노 강혜정(위쪽)과 테너 엄성화.

“시계 속 시간이 아니고 극적인 시간을 생각해 주세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 (연기) 속도가 빨라지는 겁니다.”

 연극연출가가 만든 오페라는 어떨까. 15일부터 나흘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오르는 오페라 ‘연서(戀書)’가 실험대에 올랐다. 연서는 비단 장인 아륵과 몰락한 명문 집안의 딸 도실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은 창작 오페라다. 2010년 12월 초연된 ‘연서’는 서울시 오페라단이 야심 차게 내놨던 작품이지만 흥행 ‘홈런’에는 실패했다.

 지난달 21일 남산창작센터 제3 연습실에선 오페라 연서의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연출을 맡은 양정웅(44·사진) 씨가 성악가들과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는 연극 ‘페르귄트’ ‘한여름 밤의 꿈’ 등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서도 주목을 받는 스타 연극 연출가다.

 “(무대 앞으로) 나왔다가 들어 가는 게 임팩트가 있는 것 같다.” (연출자 양정웅)

 “이 부분에서 아륵의 (화난)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한 발 앞으로 더 나가봤다.” (아륵 역 테너 나승서)

 양씨의 입에선 ‘방백(연극에서 관객들만 들을 수 있는 대사)’을 비롯한 연극 용어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는 연습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무대로 나와 성악가들의 동선을 일일이 조정했다. 직접 연기를 하면서 성악가들이 표정과 행동에 더 신경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오페라에 연극이 덧입혀졌다.

 “(무사 기탁이) 칼을 뽑는 이유가 (아륵을) 진짜 죽이려고 그러는 건가.” (기탁 역 바리톤 김재일)

 “안 말렸으면 죽였을 거다.” (양 연출가)

 “하나의 위협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심하게 표현해야겠다.” (바리톤 김재일)

 “거기서는 꼭지가 돈 거다.” (양 연출가)

 양씨는 “전통적이면서 보편적이고 관객들에게 친근한 드라마를 만들어 가는 것이 이번 오페라 연출의 포인트다. 드라마 부분을 강조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그가 오페라 ‘연서’에 뛰어든 데는 서울시 오페라단 박세원 단장(65)의 역할이 컸다. “2년 동안 스케줄이 차서 힘들겠다”고 거절하는 그를 박 단장이 설득했다. 박 단장은 “노래를 중시하는 오페라의 특성상 성악가들은 (연극 배우들에 비해) 동선이나 연기가 부족하다”고 했다. 박 단장은 지난 2008년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이탈리아에서 공연하면서 연기 부분을 보강하지 않으면 한국 오페라가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공연계에선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양 연출가와 박 단장이 손을 잡은 것을 놓고 물음표를 다는 이들이 많다. 21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뛰어넘고 함께 타석에 들어선 두 사람이 ‘연서’를 되살려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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