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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 무상복지에 탈 난 7조짜리 보육사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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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7일 시작된 민간 어린이집 파업이 이틀 만에 끝났다. 정부는 큰 혼란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힘든 시간이었다. 전국 민간 어린이집 1만5000여 곳 중 특히 수도권에선 10% 이상이 단축 수업을 하거나 통학 버스를 운행하지 않아 학부모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경실련·공공운수노조 등 각계의 비판이 이어졌다. 전면 휴원(29일)을 앞두고 28일 보건복지부 손건익 차관과 전국민간어린이집 분과위원회 박천영 위원장이 마주 앉았고 협의 끝에 29일 어린이집을 정상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복지부와 위원회는 올 상반기에 협의체를 만들어 보육사업지침의 불요불급한 기준을 고치기로 했다. 박 위원장은 “민간시설에 맞는 재무회계 기준을 만들기로 했으며 이런 약속을 문건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보육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빠르게 확대된 복지 사업이다. 2001년까지 저소득층 위주로 지원하던 것이 약 10년 만에 전면 무상보육에 가깝게 확대됐다. 특히 정치권의 무상복지 바람 때문에 여당·야당·정부가 보육 확대 선점 경쟁을 벌였다. 이 때문에 보육료 예산이 올해 5조원, 지방정부의 자체적인 보육사업까지 합하면 약 7조원까지 늘었다. 이렇게 돈을 쏟아 붓는데도 사상 초유의 파업이 벌어지고 부모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무상보육이 되면 어린이집 이용자가 늘어 더 좋아질 텐데도 파업을 했다.

 이유는 보육 확대 속도가 너무 빠른 데 있다. 돈과 대상자를 늘리는 양적 확대에 치중했을 뿐 누적된 문제점을 제대로 손보지 않았다. 민간 어린이집 질 평가가 안 돼 부모들이 믿고 맡길 만한 데를 찾기 힘들고 괜찮은 데는 장기간 대기해야 한다. 민간 어린이집 보육 교사들의 열악한 대우도 제대로 개선되지 않았다. 올해 만 5세 의무교육(누리과정)이 시행되면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구분이 의미가 없게 됐다. 어린이집들이 “우리도 유치원에 맞춰달라”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예를 들어 유치원은 한 달에 5일 이상 등원하면 한 달치 학비를 받지만 어린이집은 11일 이상 가야 한다.

 두서 없이 보육을 확대한 점도 파업의 빌미가 됐다. 지난해 12월 말 여야가 예산심의 과정에서 0~2세 무상보육을 불쑥 끼워 넣었다. 3~4세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나자 내년에 3~4세도 그리하기로 했다. 원래 3~4세가 먼저 가는 게 맞다. 동시에 보육료 지원단가(4세 17만7000원)를 20만원으로 올렸다면 반발이 덜 했을 것이다. 순서가 뒤바뀌면서 올해 무상보육에서 소외된 상위 30%(서울은 41%) 가정의 부모들의 불만이 여전하다.

 0~2세의 경우 무상보육보다 양육수당을 확대했어야 한다. 무상보육을 하니까 집에서 키우던 애들이 너도나도 어린이집으로 나오고 있다. 2월 한 달간 어린이집 신청 예상자 34만 명 중 상당수가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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