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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칼럼] 전문가 손에서만 복은 약이 됩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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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복어는 독이 있다. 독을 제거하지 않고 먹으면 최악의 경우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되지 않는 복어의 내장과 혈액을 담은 쓰레기봉투를 실수로 버리지 못하고 뒤뜰에 두고 퇴근한 적이 있다. 다음 날 모든 쓰레기봉투가 도둑고양이의 발톱에 뜯겨져 있었지만 내장이 든 쓰레기봉투는 온전히 있었다. 고양이가 복어의 독을 알고 내장을 먹지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만큼 복어의 내장이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생물체로부터 기피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이제 막 독이 오른 내장을 제거한 복어 살은 어떨까. 복어 종류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복어 살은 회칼이 튕겨질 만큼 단단하다. 반면 우유 빛의 속살 위를 보면 투명한 청아함을 보여준다.

 복 지리나 복어탕 혹은 된장과 함께 뼈로 오랫동안 우려낸 ‘토장’에 담긴 복어 살은 그 색보다 더 깊은 맛을 가진다. 살이 다른 복어보다 물러 쉽게 풀어지는 까치복은 찜보다 지리를, 밀복은 양념이 가미되지 않는 집 된장에 살을 발라낸 뼈로 장시간 끓인 ‘토장’이 제격이다. 살 몇 점만 넣어도 국물이 희뿌옇게 우러나오는 참복은 어떤 국물과도 잘 어울린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복국에 변화가 일어 날 때가 있다. 지난밤 술에 혼미해진 정신과 육체를 이끌고 겨우 복 집 문지방을 넘어선 주당들 앞에 놓인 복국. 그들은 아무 의심 없이 속 풀이를 한다. 그것이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복어 독에 중독된 사건이 한 번씩 터질 때마다 그 이야기가 전혀 다른 현실로 받아 들여져 많은 복 집이 문을 닫는다. 복어조리사가 아닌 비전문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복국은 독국이다. 대부분 복어 독에 중독된 사건은 이 독국을 먹고서 일어난다. 한 번 각인된 인식은 세월을 거쳐야 사라진다. 복어 독에 인식된 생각을 다시 바로 잡는데 수개월이 걸리고 또 다시 사건이 일어나고 반복된다.

 사라지는 세월을 기다릴 수 없는 가게가 늘어날수록 소동파(중국 북송 때의 제1의 시인)도 즐겨 찾았다는 복국의 다양한 진 맛을 우리는 점차 잃어가게 될 것이다. 복어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제거하고 물로 한 번 씻고 복국을 바로 끓이는 복어 조리사는 없다. 눈과 내장 껍질을 벗기고 뼈 사이사이의 신장과 남은 찌꺼기를 완전히 제거한 다음 물로 수 십 번을 헹궈서야 비로소 하나의 음식으로 손님상에 오를 수 있다.

 복어 자격증 아래에 일련의 번호가 새겨진 복 집 문지방을 넘었으면 이제는 복어가 독이 아니라 내 몸에 이로운 득이 됨을 모든 이들이 알았으면 한다.

하종률 까치복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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