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기업 50% 업무 지시 도급인가요, 파견인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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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대자동차의 사내하도급 업체에서 일하다 해고된 근로자를 불법 파견근로자로 인정한 23일 대법원 판결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판결 적용 대상을 둘러싼 해석도 제각각으로 나오고 있다. 한 현대차 도급업체 업주는 24일 “70여 명의 근로자들이 ‘나도 현대차의 정규직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다 현대차로 가면 정작 우리 회사는 빈 껍데기만 남는 거 아니냐”고 걱정했다. 하지만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특정 개인에 관한 것으로 이를 전체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고 실제로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법원 판결을 두고 이처럼 상반된 해석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관련 법 규정이 애매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도급’과 ‘파견’ 구분을 두고 논란이 많다. 도급과 파견은 한 회사가 자기 근로자들을 다른 회사에 보내 일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법적으론 분명히 구분된다. 업무 지시, 작업 명령 등을 소속 회사(파견 사업주)가 하면 사내하도급이고, 근로자들이 실제 일하고 있는 회사(사용 사업주)가 하면 파견이다. 도급이 민법상 노무공급 계약인 반면 파견은 노동관계법인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에 규정돼 있다.

 현대차 같은 제조업체는 도급 계약은 가능하나 파견근로자를 쓰는 건 불법이다. 그러나 실제로 도급과 파견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어렵다. 업무 지시, 작업 명령 등을 누가 내렸는지 따지는 게 ‘칼로 무 자르듯’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이를 최대한 나누기 위한 세부 규정도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법원 판결이 나올 때마다 해석이 엇갈리기 일쑤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도급과 파견에 대한 법적 정의와 범위가 불분명하다”며 “예를 들어 사용주와 파견주가 50대 50으로 지시·명령을 했다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관련 법 규정을 정밀하게 다듬어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인적자본연구본부장은 “정의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노·사가 재판까지 가게 되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법 정비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법 개정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종길 근로개선정책관은 “법에 모든 사항을 일일이 규정하긴 힘들다”며 “법 개정을 해도 결국 근로감독관이 현장에서 확인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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