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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누가 강용석을 자칭 ‘괴물’로 만들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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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효식
정치부문 기자

무소속 강용석 의원은 지난 16일 트위터에 “박원순과 싸우다 보니 강용석도 괴물이 돼 가는 듯하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 “OOO씨, 남친 손잡고 공개신검에 나오라”며 박 시장의 아들 주신(27)씨의 여자 친구 실명을 공개했다가 인격모독이란 비난을 받자 변명조로 적은 글이다.

 스스로 괴물이 돼 가는 것 같다고 하면서도 강 의원은 사생활 스토킹을 멈추지 않았다. 1월 5일 병역의혹이 처음 제기된 날부터 50일간이나 말이다. 50일간 그는 잔인한 방법까지 동원했다. 주신씨의 일상생활을 찍은 동영상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현상금을 건 것이다. 100만원에서 500만원까지 점차 금액을 올려가더니 방송에 출연해선 “진짜 박주신의 자기공명영상(MRI)을 제보하면 5000만원을 주겠다”고까지 했다.

 그는 박주신씨와 관련해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여섯 차례 열었고, 블로그엔 각종 의혹을 제기하는 글을 57건 올렸다. “변호사 자격과 국회의원 권력이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통각장애자’에게 주어질 때 어떤 끔찍한 해악을 자아내는지 여실히 보여줬다”(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도대체 누가 이런 ‘강용석’을 만들었나. 6개월 전인 2011년 8월 31일 국회 본회의장에 그 답이 있다.

 당시 의원들은 대학생에 대한 성희롱 발언으로 제기된 강용석 의원 제명안을 ‘반대 134명, 찬성 111명’으로 부결했다. 동료 의원 중 한 명은 “우리 중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며 강 의원을 감쌌다.

 제명 위기에서 살아남은 강 의원은 “센 놈과 붙어 레벨을 높여 19대 총선에서 살아남겠다”며 고소·고발을 남발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이 그의 스토킹 대상이 됐다. 결국 동료의원 감싸기가 만들어낸 게 이번 강용석 스토킹 파문인 셈이다.

 강 의원은 22일 박주신씨의 공개재검을 통해 자신이 제기한 의혹이 허위로 밝혀지자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19대 총선 불출마 여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강 의원은 4월 총선에 다시 도전장을 낼 테고, 이번 사건이 “악명도 유명세”란 식으로 그의 ‘인지도’만 올려주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총선에선 유권자의 ‘기억력’이 어느때보다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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